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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치 그리고 정치가

입력 | 1997-02-09 20:13:00


지난 연말 12월30일자 뉴욕타임스지가 우리나라 「날치기 파문」에 놀라서 사설 제목을 「한국에서의 독재의 망령」이라고 한 것은 아무래도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일소에 부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논평이었다. 그리고 「세계화」의 시대에 어떻게 이런 바깥 세계의 여론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게다가 그 사설 제목과는 다르다 해도 국내의 매스컴이 단 제목도 안이하게 보아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주간지를 보면 「민심은 졸… 어어? 아니 하늘이다」 「독선… 오만…」, 문민정부 아닌 「무민정부」 등으로 나와있으니 국제적인 여론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의 사설도 「대담한 민주개혁」으로 출발한 문민정부가 왜 지난날의 한국에서처럼 「권위주의적인 양태」로 뒷걸음질치는 것인가고 물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한보사태가 터졌다. 머지않아 金泳三(김영삼)정권 4년이 다가오고 임기는 1년만을 남기게 된다. 이 혼란 속에서 지난 4년이란 무엇이었는지를 냉철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슴없이 말한다면 도대체 정치란 무엇이며 정치가란 무엇인가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 가슴에 심어준 것 같다. 가장 슬픈 것은 이 땅에서 과연 민주주의란 가능한 것인가하는 의문마저 우리에게 남겨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별로 정치하는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났던 정치가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이 요즘처럼 정치가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이 일어날 때 되살아나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오래 전 이야기다. 굳이 대통령에 출마해야겠다는 분에게 그러지 않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민심」을 전달할 것을 친구들에게 강요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좀 이야기하다 보니까 그 분은 졸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만하라고 조는 시늉을 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곧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민주화를 외치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선의의 조언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지난 95년 6.27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한 직후였다. 여당에 속한 분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그리고 여당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나는 대통령이 정당을 떠나서 여야를 넘은 국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했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라는 것인가. 정면돌파밖에 별 도리가 없다』 ▼「밀어붙이기」정치논리▼ 나는 무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후 전개되는 정국을 보면서 나는 몇번이고 그의 말을 되새겼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낼 때도, 4.11총선에서 여당이 약진을 했다고 했을 때도 그리고 과반수를 채운다고 야당의원 빼내기를 할 때에도. 지난 연말 날치기 통과때나 이번 한보사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것이 밀어붙이기이고 이른바 「정치논리」라는 것이겠지.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문민정부 4년을 이렇게 씁쓸한 심정으로 맞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며 정치가란 그처럼 비정한 것이란 말인가.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텐데. 민주화도 개혁도 국민다수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텐데. 지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