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티슬라바〓김창희 특파원]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유명한 영어학원 원장인 바라노비코바(여)는 올해 24세. 호주에서 2년간 본격 영어강습을 받은 뒤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아 94년 외국기관과 손잡고 학원을 열었다. 『수강생들 중에는 30세 전후가 가장 많습니다. 아주 능동적으로 열심히 배우고 있어서 개인지도건 그룹수업이건 계속 확장되고 있어요』 현재 교사 25명에 학생이 7백명 정도 등록되어 있다. 근로자 평균임금이 5천코루나인 것에 비하면 주2회 수업에 2천5백코루나씩 수강료로 지출하는 일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구 40여만명에 불과한 브라티슬라바에는 대학외에 공립 사립 영어교육기관이 서너군데 더 있다. 모두 성업중이다. ▼민간부문은 왕성한 성장▼ 슬로바키아의 영어붐은 두가지 측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첫째, 신생국 슬로바키아의 경제재건은 민간부문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 둘째, 인구 5백40만명의 소국으로서 경제발전을 위해선 외국인투자 등 대외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 사실 슬로바키아는 지난 93년 체코와 분리 이후 개인의 창의력과 성실성에 승부를 거는 민간부문이 국내총생산에서 매년 60∼70%의 비중을 차지해 왔다. 여타의 중동구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종 경제지표들도 괜찮았다. 국내총생산이 95년 7.4%, 96년 6.3% 성장, 역내 최고수준을 기록한 반면 지난해 인플레이션은 6.1%로 최저수준이었다. 그러나 아직 낙관하기엔 이르다. 경제개혁의 근본적인 걸림돌들이 아직 치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유기업 사유화작업이 정치권의 영향권 내에서 자의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외국인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지난 6년동안 이 나라에 들어온 외국자본 총액은 7억4천만 달러로 헝가리의 20분의 1, 체코의 1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슬로바키아는 과거 코메콘 체제에서 대형 무기산업 분야로 특화되었던 나라. 그 때문에 사유화과정이 더욱 어렵고 그 과정에서 외국자본을 절실하게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외국자본들은 여전히 슬로바키아 진출을 꺼린다. 불안정한 정치에다 정부가 외국자본의 진출 여지를 별로 남겨놓고 있지 않기 때문. ▼“「러의존」일종의 시위”▼ 그러다보니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때 수출부문이 호조를 보이긴 했으나 최근 생활양식의 서구화에 따른 고가의 소비재 수입증가, 경제구조조정에 따른 첨단장비 수요 증가 등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저임에 견디다 못한 여의사가 독일에 간호원으로 진출했더니 월급이 10배로 불어났다」는 식의 얘기는 이 나라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푸념 가운데 하나다. 더욱 미묘한 문제는 현 메치아르 정부의 러시아 의존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 서방국가의 접근이 미미하자 메치아르 총리가 자구책 또는 일종의 시위차원에서 이같은 제스처를 보이는 것으로 서방측은 분석한다. 슬로바키아는 지난 62년이후 「드루스바」(러시아어 「우호」의 뜻)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100% 러시아에서 조달하는 형편이기도 하다. 결국 슬로바키아 경제는 당분간 국내외 「경제외적」 요인들로부터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