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령 기자] 한국인류학계 1세대인 서울대 이광규교수(65)가 최근 「문화인류학노트」 「현대 한국가족의 이해」(서울대출판부 간) 등 두권의 책을 동시에 펴냈다. 이 책들은 내년 2월로 정년을 맞는 이교수가 30여년간의 연구인생을 정리하며 인류학에 관심을 갖는 후학들과 일반인의 길잡이로 내놓은 쉬운 글 모음이다. 『66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부터 대학신문이나 교양잡지 등에 일반인들을 위해 썼던 글들을 모으다보니 인류학이란 학문이 무엇이고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여타의 인문과학들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개론적인 내용의 「문화인류학노트」 한권이 만들어지더군요. 「현대 한국가족의 이해」도 인류학적인 관점으로 급격하게 변화돼가는 한국의 가족문제를 들여다 본 기고문들을 모은 것입니다』 인류학의 정체성(正體性)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동료교수들로부터도 『그것 공부해서 무엇에 쓸 수 있겠나』라는 빈정거림을 들어야했던 이교수로서는 최근 몇년사이 한국사회에서 인류학자들의 대중서적이 불티 나게 팔려나가고 인류학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그러나 아직은 인류학을 「미개부족의 신기한 풍습을 연구하는 한가한 학문」 정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인류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이교수는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과 현지인들간의 노사갈등, 재미교포와 히스패닉간의 인종분쟁 등 우리에게 점점 더 절실한 과제로 다가오는 타민족과 어울려 살기의 문제를 예로 들며 『인류학적인 태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류학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학문적 신조가 있다면 그것은 원시와 문명을 막론하고 각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류학적 표현에 의하면 어떤 민족의 문화를 연구하든 그 민족의 자를 갖고 재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눈에 원시인으로 보이는 민족에게도 장점이 있고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들의 존재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인류학적인 의식입니다』 학부시절 사학을 전공했지만 「역사를 주도한 인물보다는 역사에서 낙오된 민족, 엘리트보다는 보통사람을 연구하는」 인류학에 매료돼 길을 바꿨다는 이교수는 80년대 이래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교포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교포들에 대해 『연구대상이 아니라 한민족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낀다』는 이교수는 국내 조선족들의 구호기관인 「중국노동자센터」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교수는 두권의 책을 마무리하자마자 「중국노동자센터」에 접수된 억울한 사연들을 모아 「한국에 있는 중국교포들의 생활실태」 집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