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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노트]김순덕/추락하는 서울

입력 | 1997-02-18 20:10:00


대학동창 세명이 유학을 갔다. 남편을 서울에 둔채 아이들만 데리고 가는 유학이 40세 안팎의 주부들 사이에 신종 유행이라며 분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뒤늦게 유학을 간 이유를 알아보니 만학에 대한 불타는 욕구가 전부가 아니어서 충격적이었다. 『한달 생활비 2백만원중 두 아이 과외비가 3분의 1이다. 초등학생인 아이들 때문에 요즘도 온식구가 손가락 빨고 사는데 더 크면 어떨지 끔찍하다. 곰곰 따져보니 뉴욕에 가서도 맨해튼에만 살지 않는다면 남편 월급으로 내 학비는 물론 집세와 생활비까지 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더구나 아이들도 학원 끌려다니지 않고 사람답게 살수있으니 굳이 이땅에서 아등바등 살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럼 남편은?』하고 묻는 내게 서울의 아파트를 전세준 돈으로 남편은 원룸주택을 구했으며 그 차액에서 나오는 이자로 혼자 살 생활비는 나오더라고 설명해 주었다. 속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외국바람 든 여편네들」이라고 나무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머리를 스친 것은 중산층 가정을 해체시키면서까지 이 땅을 떠나게 만드는 「추락하는 서울」의 위상이었다. 근로자 절반이 봉급만으로 살지 못하며 그 가장 큰 이유가 막중한 사교육비에 있는 이 사회는 외계인이 봐도 비정상적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기는 5천만원 정도야 떡값에 불과하다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더욱 분한 것은 지난해 5월31일자로 교육개혁이 됐다는데도 사교육비 부담이 줄기는커녕 되레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학기부터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시작된다고 하자 집집마다 영어과외시키기에 바쁘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수업때 바보가 될 것임을 지금까지의 경험이 입증해주고 있다. 교육현실이 그러함에도 『에미들 의식이 잘못돼서 아이들만 고생시킨다』고 본질을 호도하는 이도 있으니 주부들은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다. 세계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서울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그래도 여행자들은 낫다. 안오면 그만이니까. 외국으로 떠날 수도, 서울을 벗어날 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학원이 있다면 나부터 다녀보고 싶다. 김순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