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창중에 남보다 미적 감각과 직관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나름대로 「탁월한」 안목과 식견을 토대로 친구들에게 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얘, 너는 피부가 좀 검은 편인데 보라색 스웨터를 입으니까 정말 안 어울린다』 『이마도 넓은데 머리까지 뒤로 넘기니까 얼굴이 완전히 큰바위 얼굴처럼 보이잖니』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만이 아니다. 그는 친구들의 육아방식이나 재테크까지 「애정어린 충고」라며 꼭 한마디씩 거드는데 대개 부정적 표현 일색이라 듣는 사람은 거북한 표정을 짓게 마련이다. 며칠전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동창들이 소모임을 가지면서 자기만 빼놓았다는 하소연이었다. 『왜 다들 나만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입에 발린 말은 누가 못해. 다 자기들한테 도움되라고 일부러 솔직하게 말해주면 고마워 해야지…너무 억울해』 가까운 친척중에도 그런 분이 계셨다. 만날 때마다 으레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이란 말을 앞세운 뒤 『듣기 싫겠지만 너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단서를 덧붙여가며 가슴에 쾅쾅 대못박는 말을 예사로 하셨다. 물론아주틀린얘기도 아니요,일부러 기분나쁘라고 하는 말이 아니란 것도 안다. 말이란 칼날과 같아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지만 우리 마음에 상처를 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을 보면서 남에게 진정한 충고나 조언을 하기란 얼마나 힘든지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나부터도 가족이나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이를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얼마전 만난 심리상담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건설적 비판이란 없다는 말이었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옳은 지 남을 계도하고 고쳐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제넘은 잔소리나 비난밖에 되지않는다』며 『상대의 변화를 원한다면 우선 그 사람의 장점을 읽는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충고에는 말의 책임이 뒤따른다. 상대가 원할 때, 또 그럴 때라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보라색이 안 어울린다고 속을 뒤집어놓기보다 새 스웨터를 사다주면 어느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럴만한 애정이 없다면 「애정어린」 충고 역시 아끼는 편이 낫다. 고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