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3.1절이었다. 이른 아침 뒷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었다. 산마루 달동네의 다 쓰러져가는 초라한 집 대문에 유난히도 깨끗하고 선명한 태극기가 게양돼 있었다. 나는 자신있게 얘기했다. 『저 집에는 분명 초등학교에 다니는 소년이 있을걸세』라고. 실례를 무릅쓰고 그 집을 방문, 예상한대로라는 것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계속해 산마루를 내려오면서 몇 동네를 누벼봤지만 국기가 게양된 집은 눈에 띄지 않았다. 비교적 지식층이 많이 산다고 알려진 동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국경일이라 집에서 편히 쉬면서도 국기 하나 게양하지 않는 사람들이 애국선열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3.1절은 선열들이 일제의 총칼에 맨몸으로 맞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피흘렸던 사실을 잊지 말자고 국경일로 정한 날이 아닌가. 온국민이 기념하는 3.1절을 망각한 사람들은 가난한 그 산동네 소년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마땅하다. 또 20여년 전 전남 광양에서 목격했던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또래의 두 꼬마가 길모퉁이에서 정신없이 싸우다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싸움을 멈추고 차렷자세로 국기강하식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가끔 그 꼬마 애국자들의 갸륵한 행동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국경일을 비롯한 각종행사의 국민의례 때 시간관계라는 이유로 애국가를 1절만 부르는 것이 관례가 됐는가 하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은 생략하기 일쑤다. 매일같이 실시되던 국기강하식도 자율화 물결에 휩쓸려서인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극장에서 영화상영 직전에 울려퍼지던 애국가마저 들을 수 없게 되다 보니 국경일이나 기념일에 국기를 게양하는 의식도 약해진게 아닌가 한다. 행여 나라사랑에 대한 일반의 의식마저 소홀해지는건 아닌지 걱정된다. 나라사랑은 작고 쉬운 일부터 시작된다는걸 어느 국민이 모르겠는가. 그러나 참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애국심은 국가애(國歌愛)와 국기애를 통해 함양될 수 있다.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은 나라와 겨레의 상징인 국기의 존엄성을 알고 소중히 다루며 국경일에 반드시 국기를 게양하는데서 비롯된다. 이번 3.1절에는 산동네 꼬마의 국기게양 자세와 두 소년의 국기강하식 참여태도를 거울삼아 우리 모두 나라의 고마움을 잊지 말고 경건한 마음으로 국기게양에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송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