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김창희기자] 『우리 회사는 한국과 꽤 인연이 깊지요. 한국전쟁 때 미그기를 라이선스 계약으로 생산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니까요』 체코 최고(最古)의 항공기 제작회사 레토프의 마케팅 담당자 스테판 세르난스키는 아주 활기있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화는 자주 끊겼다. 『최근엔 전쟁도 별로 없고 주고객이던 러시아가 지불능력이 없어짐에 따라 「돈이 되는」 전투기 주문이 「조금」 줄었습니다』 ―「조금」이란 어느 정도인가요. 『(한동안 말이 없다가)80년대말에 비해 90%정도 줄었습니다』 ―89년이후 매출액 추이 좀 봅시다. 『(한참을 옆방에 다녀온뒤)재정담당 이사가 비밀사항이라 자료를 줄 수 없다고 하는군요』 종업원이 3천5백명이나 되던 이 유서깊은 국영기업을 살리기 위해 91년이후 정부와 은행은 새 주인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또 레저용 글라이더와 패스트푸드 이동차량을 제작하는 등 비행기 제작회사로서는 전락(轉落)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부서들까지 신설됐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하이테크 습득 등을 위해 연간 3백만달러 정도의 투자가 필요한데 이를 충당할 국내외 자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벽이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컴퓨터 한대뿐인 마케팅 책임자의 방에서 난감한 대화를 나누다가 직접 공장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공룡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미그기 조립공장 안에는 날개 등 일부 부품을 제작하는 10여명의 근로자가 전부였다. 다른 작업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창과 칼을 녹여 쟁기와 보습을 만드는 일이 마음먹은대로 쉽게 되는 것만은 아니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