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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여자의 사랑(61)

입력 | 1997-03-07 08:21:00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 〈16〉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갑자기 짜증이 난 것이 아니라 처음 그로부터 자기는 꼭 기숙사에 들어가 식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런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는 자신에게 누구도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는 생각 같은 것이 이미 그녀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늦게 헤어지고 싶어도 늦게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의 만남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는 생각 같은 것이 엄마에게 그대로 항의처럼 터져나온 것이었다. 차비조차 없는 그와 함께 걸어서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또 배가 고픈데도 음식점으로 가지 못하고 각자 기숙사나 집으로 돌아갔던 것에 대해 엄마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서운한 생각부터 들고 만 것이었다. 『어디가 아픈데 그래?』 『몰라요. 아픈 데 없으니까』 『병원 안 가봐도 돼?』 『괜찮아요. 그냥 몸살이니까』 『이리 와봐. 엄마가 이마 좀 짚어보게』 『괜찮다니까』 『그러니까 몸 생각해 일찍일찍 들어오고 해야지』 『정말 엄마는? 내가 얼마나 늦게 들어와서…』 『너 요즘 남자 만나니?』 아픈 딸을 앞에 두고 엄마가 정색을 하듯 물었다. 『그래요. 나 요즘 남자 만나요. 그래서 매일 그 시간에 들어오는 거라구요. 저녁도 먹지 못하고 헤어져서』 그 말에 엄마는 더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헤어져서, 라는 말을 남자를 만나요, 하는 말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들었을지 모른다. 뜨는 둥 마는 둥 식탁에 앉았다가 그녀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잠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누워 열을 내린 다음 오후 수업엔 꼭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머리가 혼미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불을 덮으면 온 몸에 열이 났고, 이불을 젖히면 으슬으슬 몸이 떨리며 한기 같은 것이 몰려왔다. 그러다 잠에서 깨었을 땐 이미 수업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나 있었다. 나, 오늘 학교에 갔어야 했는데…. 책상 위의 시계를 바라보며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로 중얼거렸다. 틀림없이 그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