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기금 조성문제가 공론화할 전망이다. 權五琦(권오기)통일부총리는 7일 통일기금 조성에 대해 구체적인 검토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발언은 통일비용문제를 더이상 「미래의 과제」로 방치할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즉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 黃長燁(황장엽)노동당비서 망명사건 등 최근의 북한 내부동향으로 볼때 북한이 심각한 체제위기에 직면한 것이 틀림없으며 따라서 통일이 예상외로 빨리 올 수도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날 권부총리가 고위당국자로서는 처음으로 통일기금을 거론했지만 정부는 이전부터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꾸준히 검토해왔다. 실제로 정부는 96년도 예산안항목에 통일기금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재원마련의 어려움과 「시기상조론」 등에 밀려 유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비용은 통일시기를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크게 다르지만 전문가들은 적게는 4백억달러(약 32조원)에서 많게는 1조5천억달러(약 1천2백조원)까지 들 것으로 보고 있다. 90년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경우도 이후 5년간 동독재건 등에 무려 1조6천억달러(약 1천2백80조원)를 썼다. 물론 정부가 조성하려는 통일기금은 통일비용의 전부를 마련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보고서는 통일기금이 효과적으로 쓰이려면 16조∼40조원은 적립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고려중인 통일기금 규모도 수십조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부내 관련부처들은 그동안 통일비용 및 통일기금의 재원마련 방안도 검토해왔다. 여기에는 해외조달(차관도입)과 국내조달(예산전용 세금신설 국채발행)의두가지방법이 있으나 통일기금 만큼은 국내에서 만들어 내야 한다는게 정부의 판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가 통일기금을 성공적으로 조성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험난한 산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우선 기금조성 자체가 북한을 자극, 남북관계를 긴장시킬 우려가 있다. 통일기금은 사실상 흡수통일에 대비하는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기존의 남북협력기금(현재 3천4백억원)과는 별개로 통일기금을 만들면서 북한의 반발을 무마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기금을 마련할 것이냐는 문제다. 이에 대해 경제부처와 경제전문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돈을 그저 쌓아두는 것보다 산업구조 조정과 국제경쟁력 강화에 사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통일대비책이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더욱이 국민들이 결국 개개인의 부담으로 돌아올 통일기금 조성에 기꺼이 찬성할지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문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