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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타결/새법안]겉보기엔 「勞使균형」 이룬셈

입력 | 1997-03-09 09:20:00


8일 국회에서 여야가 노동법 재개정안에 합의함으로써 지난 1년동안 숱한 파란을 일으켰던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법개정 작업이 마무리됐다. 이날 국회에서 합의된 재개정안은 지난해 12월26일 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한 개정법에 비해 노동계의 요구를 상당부분 더 수용함으로써 외형상 노사간의 균형을 맞춘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최대 관심사항인 정리해고제 시행을 2년간 유예하고 해고사유도 「날치기 노동법」에 비해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근로자들은 일단 정리해고제 법제화에 따른 심각한 고용불안은 면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2년 동안은 지금까지 처럼 법원판례에 의한 해고만이 가능하게 된다. 반면 경영계는 법원판례보다 훨씬 제한적으로 해고사유가 규정됨에 따라 당초 기대했던 「고용조정 자유화」라는 목표를 완전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법률상 아무 근거가 없었던 정리해고가 일단 법제화됨으로써 본격적인 「고용조정」시대를 열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은 경영계 입장에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노동계도 2년후의 「정리해고 시대 개막」이 불안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고용조정 유연화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사 모두가 승자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날치기 개정법에서는 3년간 유예됐던 상급단체 복수노조 설립이 여론과 국제사회의 촉구에 따라 「즉각 허용」으로 바뀜에 따라 민주노총의 합법화 등 노동계의 판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변형근로제는 정리해고제에 비해 일반 근로자들에게 주는 절박함이 덜하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날치기 법의 골격이 유지된 상태에서 노동계의 요구가 소폭 반영됐다. 노동기본권의 핵심쟁점인 교원과 공무원 단결권 허용은 보수층의 반발에 부닥쳐 결국 유예됐고 일선 단위노조 집행부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2002년부터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도 그대로 존속됐다. 이처럼 이번 노동법재개정은 노사 양측의 요구를 절충하는 선에서 이루어짐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 회복」과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두가지 목표 가운데 어느 것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이뤄내지는 못했다. 노동전문가들은 노사개혁이 어중간하게 끝나게 된데는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개혁의지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는 노사개혁의 기본 취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개혁추진세력에 힘을 실어줬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재계와 보수층이 노동기본권 보장에 강력히 반발, 개혁 방향이 근본적으로 흔들렸는데도 대통령은 노사합의만 강조할 뿐 아무런 힘을 보태주지 않았다는 것. 陳稔(진념)노동부장관 등 개혁추진세력은 마지막까지 『정리해고 변형근로제 등을 선진국 수준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반대급부로 교원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촉구했으나 경제부처와 재계의 완강한 입장에 밀렸고 그 결과 총파업이라는 소모전을 치러야했다. 노동전문가들은 이번 노사개혁에서 하나같이 민감한 노동법 쟁점들을 대폭 손질한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새 노동법이 21세기를 맞는 한국 사회가 입기에는 재단이 다소 허술한 「옷」이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이기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