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기자] 회사원 김씨(35·서울 서초구 방배동)는 지난 2월말 『주말에 집에 와서 식사나 같이하자』는 큰형(42·개인사업)의 전화를 받고 일요일 부인과 애들을 데리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형님 집을 찾았다. 가까운 친척과 형 친구의 가족들까지 20여명이 모여 다과를 즐기고 있는데 막상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빠∼앙』 요란한 클랙슨소리가 대문쪽에서 들려왔다. 『잠시 밖으로 나와달라』는 형수의 주문에 따라 모두가 마당으로 나섰다. 대문이 활짝 열리며 꽃과 리본으로 요란하게 장식한 검은색 다이너스티 승용차가 들어왔다.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 앞에 멈춘 차의 트렁크가 열렸다. 팡파르와 함께 트렁크에서 나온 것은 턱시도 차림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는 큰형이었다. 이날 모임은 바로 형의 새차 구입을 기념하기 위한 「시승식 이벤트」였던 것. 이벤트란 모임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치르는 행사. 이벤트전문업체 나라커뮤니케이션의 이벤트PD 윤나라씨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30,40대 중에서 자신들이 관여하는 모임이 사전에 충분히 「연출」돼 의미와 재미를 겸비한 특별한 행사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이런 이들을 겨냥한 이벤트 업체가 서울지역에만 6백개가 넘는다. 지난해 가을에는 서울의 한 「뼈대 있는」 가문의 묘제(墓祭)뒤에 연예인이 동원되고 노래자랑과 게임 등이 포함된 이벤트행사가 이어졌다. 한국이벤트 대표 김광씨는 『돌잔치 백일잔치 회갑연 등 전통적인 가족행사와 동창모임의 의뢰가 한달에 4,5건이던 것이 2,3년 사이 2배이상 증가했다』고 말한다. 선우이벤트와 듀오를 비롯한 미팅전문 이벤트 업체들은 요즘 50∼1천쌍 규모의 남녀를 한번에 미팅시키는 행사를 한달에도 10여차례씩 치러내는 등 청춘남녀들의 첫만남에도 이벤트가 끼어들고 있다. 일부 업체는 지난달 말 있었던 중국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장례식에서 힌트를 얻어 화장을 한 뒤 뼛가루에 꽃가루를 섞어 유언으로 지정한 지역의 상공에서 비행기로 뿌려주는 「장례이벤트」와 신랑신부가 기구를 타고 내려오는 결혼식 등도 기획하고 있다. 한양대 인류학과 조흥윤교수는 『그동안 있어온 모임들이 내용도 부족하고 즐거움을 주지 못한데 대한 반작용 때문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돌출적이면서 의외성과 흥미를 강조한 이벤트성 행사를 선호하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세상만사」를 이벤트화하려는 최근의 추세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족모임까지 이벤트화하려는 경향은 모임문화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진지함이 전제되어야 할 행사마저 한편의 「쇼」로 변모시키고 참석자를 단순한 관객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