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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 프리즘]영화제목 짓기

입력 | 1997-03-11 08:35:00


[박원재기자] 아기를 낳으면 예쁜 이름 짓느라 고심하듯 충무로 사람들은 영화 한편을 선보일 때마다 그럴듯한 제목을 짜내기 위해 몸살을 앓는다. 영화가 좋아도 제목이 받쳐주지 못하면 흥행에 실패해 버리기 때문. 영화 제목의 최종 결정권자는 큰 돈을 들여 영화를 제작했거나 수입한 영화사 사장. 10명 안팎의 영화사 직원이 회의를 거듭하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광고대행사나 기획사, 또는 주변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좋게 말해 「아이디어 총동원」 방식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영화사의 영세성이 제목짓기에도 적용되는 양상이다. 가장 손쉬우면서도 안전한 방법은 수입영화의 원제목을 그대로 쓰는 것. 「스피드」 「보디가드」는 간단 명료하면서도 영화 내용과의 연관성도 살린 「좋은 제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원어를 옮겨 쓰는게 반드시 모범답안은 아니다. 지난해 개봉된 「업 클로즈 앤 퍼스널」(Up Close and Personal)과 「투 이프 바이 시」(To If By Sea)는 제목만으로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손님을 잃은 케이스. 올해 아카데미상 12개부문 후보에 오른 「잉글리시 페이션트」(English Patient)도 의미전달 면에서 「영국인 환자」 쯤으로 번역하는게 더 나을 것이라는 의견들. 전문가들은 좋은 제목의 요건으로 △발음하기 쉬울 것 △영화내용을 함축 반영할 것 △가급적 적은 단어로 표현할 것 등을 든다. 워너브러더스의 한순호부장은 『드라마의 경우 여운을 남기는 시적 표현이 제목에 들어 있으면 금상첨화』라며 지난해 개봉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칭찬했다. 「한국형」 제목을 과감하게 채택해 성과를 거둔 사례는 홍콩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방불패」의 원제목은 「소오강호2」. 「소오강호」 1편이 흥행에 실패한 점을 의식한 수입사측은 극중 임청하의 이름이 동방불패라는 점에 착안, 제목을 바꿔 톡톡히 재미를 봤다. 제목짓기가 쉽지 않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외국영화 제목을 「표절」한 한국영화도 적지 않다. 「돈을 갖고 튀어라」는 우디 앨런 감독의 「Take the Money and Run」, 「개같은 날의 오후」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Dogday Afternoon」, 「똑바로 살아라」는스파이크리감독의 「Do the Right Thing」을 원문대로 번역한 것이다. 제목앞에 유명배우를 내세운 영화는 일단 완성도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부족함을 배우의 유명세로 얼버무리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