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기자]「축제」(이청준)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장정일) 「인샬라」(권현숙) 「불새」(최인호 원작). 96,97년 스크린을 통해 선보인 소설 목록이다. 문단에서는 꽤 주목을 받았던 문제작이지만 극장 흥행은 제작비도 못건질 정도로 초라했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는 그나마 비평가들의 호평과 주요 영화상 수상으로 상업적 실패를 위로받은 케이스. 반면 「너희가…」의 오일환, 「불새」의 김영빈, 「인샬라」의 이민용 감독은 『소설 분위기만 망쳤다』 『원작의 감동을 못살렸다』 『연출력의 빈곤이 엿보인다』는 혹독한 비판에 시달렸다. 그러나 영화감독은 여전히 작가에게 손을 내밀며 소설의 영상화에 매달리고 있다. 「문학과 영화의 동거」는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중견감독의 재기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충무로 제작의 중심 축을 형성하는 양상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시도는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키며 1백여만부가 팔린 김정현씨 소설 「아버지」의 크랭크 인. 80년대 중후반 「레테의 연가」 「불의 나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등을 발표해 문학에 대한 독창적 해석력을 인정받은 장길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죽음을 앞둔 중년가장을 통해 가족의 의미와 사랑을 짚어보는 이 작품은 6월 개봉을 목표로 절반가량 촬영이 진행된 상태. 박근형 장미희가 주인공 부부로 출연한다. 「겨울 나그네」의 곽지균 감독은 신경숙씨의 베스트셀러 「깊은 슬픔」을 20일경 크랭크 인한다. 「깊은 슬픔」은 시골에서 함께 성장한 한 여자와 두 남자사이의 엇갈린 사랑을 감성적 터치로 그릴 정통 멜로물. 주인공 은서역에는 당초 신은경이 캐스팅됐으나 뺑소니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강수연으로 교체됐다. 신인 감독들도 소설속 이야기를 소재로 데뷔전을 준비하고 있다. 하일지씨의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는 구성주감독이 연출을 맡아 4월초 개봉할 예정. PC통신을 통해 젊은 층의 선풍적 인기를 끈 「퇴마록」(박광춘 감독)과 제1회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작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배병호 감독)도 영화로 꾸며질 예정이다. 문학작품의 영화화 붐은 창작 시나리오 기근에 허덕여온 충무로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베스트셀러 소설의 경우 원작 인지도가 높을 뿐 아니라 극적 구성의 치밀성 면에서 이미 독자들의 「검증」을 받은 점도 제작자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 그러나 영화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흐름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원작의 성공에 편승하려는 안이한 기획의 범람을 걱정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