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의 많은 인사들이 국가로부터 훈포장을 받는 연말연시 서훈(敍勳)의 계절이 지나갔다. 어느 나라에나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사회적 규범을 실현하기 위하여, 한쪽에는 상훈포상제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형사제도가 있다. 실제 서훈이 시행과정에서는 왕왕 파문을 일으키거나 구설이 생기곤 한다. 그것은 주로 수여대상과 훈격의 공정성 형평성문제에서 야기된다. 훈장은 공신력이 있어야 하고 받는 사람이 진심으로 명예감을 느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서훈자에게 큰 감동을 주고 격려가 되어야 하며 사회적으로는 그 뜻이 널리 전파되어야 한다. 따라서 훈장은 서훈자에게는 큰 영광을 안겨주고 사회적 의의 역시 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훈대상의 선정과 훈격 적용에 있어 최대한의 객관성이 유지되면서 공정성과 형평성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서훈을 둘러싼 파문▼ 얼마전 모작가의 문화훈장 거부사건이 문화계에 파문을 던졌던 일을 기억한다. 일본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가 문화훈장을 거부하여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일이 있다. 그때 당자가 썼던 표현은 잊었으나, 문화훈장이 제정될 당시 일본제국의 시대정신 문화정신과 현대 일본의 시대정신 문화정신은 다르다는 것이 공식적 거부이유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 노벨상 수상 이전에 훈장을 주지 않고 이제서 주느냐에 대한 불만이 아니냐,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에 제정된 훈장이라 거부했다지만 입헌군주국인 스웨덴에서는 왜 받았느냐는 등의 사회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화계와 사회일각에서는 국민훈장이 됐든 문화훈장이 됐든 오비이락(烏飛梨落)일지는 몰라도 훈격이 결정되어 서훈자가 발표될 때 거부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서훈제청이 진행되고 있음이 사전에 인지되었다면 초기에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훨씬 개운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개선장군은 훈장을 목에 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래는 큰 업적을 이룬 사람이 한때 지나치게 국가나 사회로부터 추앙받으며 두드러지게 나타나면 결국은 정치적으로 희생되고마는 많은 역사적 교훈에서 나온 것으로 알지만, 서훈자가 겸허해야함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등급 없애고 소수 정선을▼ 현행의 상훈제도와 관련해서 그 제도와 운영의 측면에서 몇가지 제언을 한다. 먼저 제도적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 그 하나는 문화훈장의 경우 나라에 따라 훈격을 설정하고 있는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가 있으나 문화적 업적이란 계량적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것인 만큼 훈격을 폐지하고 그 대신 소수정선을 했으면 한다. 둘째는 흡사한 맥락에서, 현행 국민훈장은 존속시키되 옥상가옥(屋上架屋)이 안되도록 하는 차원에서 그 성격을 묶은 종합훈장으로서 훈격없는 적절한 명칭의 제2의 국민훈장을 신설하면 어떨까 한다. 셋째는 사회나 경제개발과정에서 과도적 의의를 지니고 독려와 격려의 뜻에서 제정됐던 여러 훈장들은 점차 국가발전단계에 합당하게 영구적 의의를 지닌 훈장체제로 흡수 통합해 나갔으면 한다. 앞에 말한 훈장이 새로 제정된다면 그리로 통합해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운영의 측면에서 서훈은 공정성이 확보되어도 상당한 희소성이 유지되며 응분의 특전이 보장될 때 비로소 서훈자 개인에게 돌아가는 개인가치와 국가적 의의에 부합한 사회가치가 유지될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