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주에서 나에게 인간의 위대함을 가르친 선수는, 우승자인 아벨 안톤도, 원년 대회부터 역주해온 마티아스도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김이용선수였다. 경주 시내로 들어서며 마지막 남은 선두 그룹이 질주해 나아갈 때였다. 갑자기 김이용이 몸을 비틀거리며 대열에서 벗어났다. 몸을 꺾는 그의 입에서 무엇인가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가누며 울컥울컥 세 번을 토했다. ▼결코 포기할수 없다▼ 우리 마라토너들의 전멸인가 싶었다. 이미 35㎞대에서 김완기가 처지고, 이봉주마저 시내로 들어선 분황사 앞에서 선두 그룹을 놓친 때였다. 『아』 하는 탄식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쓰러질 것으로 알았던 김이용이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그는 이제까지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보폭으로 앞서 가던 선수들을 따라 잡았다. 저 투혼, 저 의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저 정신의 순결성. 그것은 스포츠 선수가 만들어 내는 감동의 진수 그것이었다. 그가 보여준 감격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에는 진눈깨비까지 뿌렸다. 꽃망울을 준비하던 벚꽃마저 움츠러들 추위, 얼굴을 때리는 바람과 빗발이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이 몸을 풀기 시작하는 오전 10시15분, 햇살이 빛나기 시작했고 경주시민운동장은 아침 햇살로 가득해졌다. 하늘이 돕는다는 말이 그래서 경주시민들 사이에서 탄성이 되어 새어 나왔다. 레이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스로 원한 극한의 인내였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처형하는 두시간여의 순교였다. 세계의 철각들은 그렇게 비와 바람을 뚫고 달렸다. 처음부터 그룹을 만든 선수들의 역주는, 마지막까지 장엄했다. 멕시코의 카를로스 보티스타선수는 30㎞를 지나며 신음에 가깝게 윽윽 소리를 지르며 달렸다. 후스다도 선수의 약혼녀는 카메라를 목에 건채 소리 높여 응원을 하며 달렸다. 우리의 스타들, 이봉주 김완기의 역주도 세계 정상급의 늠름함을 잃지 않은 것이었다. 시작에서 끝까지의 공간, 혹은 시간 안에서의 움직임을 「운동」이라고 할 때 마라톤은 그 표본이며 절정이다. 남보다 높이, 날고 싶은 욕망, 그래서 제일인자로서의 존경을 바라는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호이징거는 말했다. 마라토너는 이 호이징거의 말을 몸으로 실현하는 사람들은 아닐까. 그래서 마라톤에는 다른 스포츠와 다른 거룩함이 있다. 1위로 들어온 자도 15위로 들어온 자도 다 함께 완주했다는 영광이 남는다. 바로 이 영광의 뒤에 후광처럼 떠오르는 거룩함을, 오늘 경주에서 확인한다. ▼古都에 꽃핀 인간애▼ 20여명이 끝까지 펼쳐낸 종반 레이스, 30㎞가 지날 때까지 이처럼 많은 선수들이 치열하게 대결하는 대회를 본 적이 없었다. 사투라고 말해도 좋을 이 질주에 「장열했다」는 말을 보태고 싶다. 첫 선수가 들어오고도 한시간여가 지났을 때까지 스타디움의 관중들이 열광하며 보낸 박수는, 바로 그런 마음에서였으리라. 한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