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기자] 서울 성동구 왕십리2동 주민들은 高弘柱(고홍주·67)씨를 「거리에 미친 노인」이라고 부른다. 지난 80년 9월부터 매일 오전 7시면 왕십리2동 전풍호텔 건너편에 나타나 교통정리를 해오기 17년째다. 『직업군인에서 전역한 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당시 2호선 지하철공사 등으로 복잡했던 왕십리 일대에서 교통정리를 시작했습니다』 감색잠바에 바지, 청색모자를 쓰고 하얀 장갑에 어깨완장을 두르면 출동준비 완료. 고씨는 『호루라기와 수신호봉을 들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팬이 생겼다』고 자랑한다. 9시쯤 교통정리를 끝내면 바로 동사무소로 가 일을 돕는다. 민방위 훈련통지서를 정리하고 누락된 통지서를 다시 나눠주는 일이 주요업무다. 오후 늦게 퇴근, 저녁을 먹고 나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다. 『말하자면 자원 방범대원 역할을 하는 거지요. 작은 사고라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오후 8∼9시에는 늘 동네를 순찰해요』 40년을 왕십리에서 산 고씨는 지난해 이사를 갈 뻔했다. 자식들은 다 출가했고 전세금도 모자라 부평에 집을 얻으려 했던 것. 그러나 왕십리 주민들은 고씨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주민들이 모금운동을 해 8백만원을 쥐어주더군요. 성동구의회 徐点錫(서점석)의원은 자기집 옥상을 우리 부부가 쓰도록 내줬습니다』 17년간의 봉사와 단련으로 누구보다 건강한 편인 그는 『주민들이 보기 싫다고 하지 않는한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