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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구칼럼]반칙에 병든 나라

입력 | 1997-03-21 20:10:00


현 정권 출범초부터 시작된 붕괴사고는 그 끝이 없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대구 지하철이 가스폭발로 주저앉더니 최근에는 재벌기업이 셋씩이나 연속 도산했다.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이렇게 자꾸 쓰러지고 무너져 내리는가. 한마디로 원칙없는 사회에 무리와 반칙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4년전 취임사에서 누구나 신바람나게 일하는 신한국창조와 도덕국가 건설을 소리높이 외쳤다. 그러면서 부정부패척결과 경제활성화 국가기강확립을 3대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공직사회에 풍기는 부정부패의 악취, 바닥 모르게 추락하는 경제와 사회기강을 보면 무엇이 신한국창조이고 무엇이 도덕국가 건설이었던가 싶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그 바탕을 지탱하는 기본가치와 원칙이 있다. 자유 민주주의 시민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엄정한 법의 존재와 정당한 절차 및 과정의 준수가 기본원칙이자 기둥이다. 그럼에도 명색이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그 기본가치와 원칙의 어느 것 하나 지켜지는 게 없다. 법치(法治)와 합당한 절차 대신 불법과 변칙이 판을 치는 마당에 상식과 순리가 발붙일 곳은 없다. 국민들의 마음이 구심점(求心點)을 잃고 파편화(破片化)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부도난 경제-사회기강 ▼ 변화와 개혁을 깃발로 내세운 김영삼정권의 시작은 그럴 듯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예외가 너무 많았다. 예외나 변칙이 잦으면 원칙은 무너지게 돼 있다. 미운털만 골라 목을 친 표적사정(司正) 뒤에 특정지역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케 한 것은 개혁의 동기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 새벽의 노동법 날치기는 의회정치의 붕괴와 권력의 반칙을 그대로 드러냈다. 김대통령은 아들 賢哲(현철)씨를 잘못 간수한 불찰을 탄식하며 회한에 잠겼다고 한다. 아무리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두었다 해도 지각있는 아들이라면 공(公)과 사(私)를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사조직(私組織)을 만들어 국가정보를 가로채며 국정 곳곳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조직적으로 정권재창출까지 시도했다니 이런 반칙도 없다. 아버지가 몰랐다면 모른대로 또 알았다면 알고도 묵인한 책임이 크다. ▼ 지금부터라도 正道를 ▼ 검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며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국가소추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존립이유이자 생명이다. 그럼에도 한보사태와 현철씨의혹수사를 거치면서 「마피아의 잣대」라는 비판과 권력의 사물화(私物化)라는 손가락질을 받기에 이르렀다. 사회정의를 위해 호루라기를 불어야 하는 검찰이 이 모양이 되었으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고 법의 영(令)이 설 까닭이 없다. 원칙이 무너지고 반칙이 횡행한 결과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대가는 엄청나다. 몇달째 계속되고 있는 혼란속에 국정은 표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임기1년이 채 안남은 대통령보고 물러가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원성과 개탄은 많아도 도무지 돌파구가 안보인다는 데 현 위기의 심각성이 있다. 어찌 할 바를 모를 때는 딴 방법이 없다.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다. 한보의혹에 관한 국회의 국정조사특위든, 검찰의 재수사든 원리원칙대로 하면 된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봐줄 것도, 덜 봐줄 것도 없다. 그는 한 젊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법대로 절차대로 처리하면 그뿐이다. 그럼으로써 반칙에 병든 나라를 치유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남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