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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구가 떠오른다/루마니아]개혁-자유화 조치 홍수

입력 | 1997-03-24 08:27:00


[부쿠레슈티〓김상영특파원] 부쿠레슈티의 은행들은 요즘 밀려드는 예금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물가폭등과 환율불안에도 불구하고 예금이 늘고 있는 것은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획기적인 예금증대 조치 때문. 1년간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이자율이 연 150%에 달한다. 10만레이를 예금하면 1년뒤에 25만레이를 주겠다는 것이다. 현지 주재 외국인들은 『환율 및 물가상승분을 제외하면 1년뒤에 실제로 보장될 수익률은 기껏해야 12% 내외가 될 것』이라고 코웃음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치는 국민들의 저축을 획기적으로 늘리는데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루마니아 전화요금은 매일 달라진다. 지난 4일 정부가 전화요금을 그날그날 환율에 연동시키기로 한 때문. 전화요금 고지서는 6개월에 한 번씩 나가는데 그사이 환율이 워낙 오르니까 「더이상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정부가 묘안을 낸 것. 루마니아는 요즘 이런 식의 조치가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다. 「개혁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물가폭등에 환율불안 ▼ 작년 12월 들어선 새 정부는 「급속한 구조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공산체제 잔재청산을 부르짖고 있다.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대통령은 작년 11월 선거유세를 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돼도 코트로세니궁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7세기에 지어진 이 궁전은 이온 일리에스쿠 전대통령이 대통령궁으로 사용했던 곳. 일리에스쿠정권을 「신공산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취한 상징적 조치다. 새 정부는 시내버스요금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지난달 폐지했다. 국영기업에 싸게 공급하던 에너지 값도 국제수준으로 올렸다.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인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합작투자법과 민영화법을 바꾸는 논의가 국회에서 한창이다. 빅토르 시오르베아 총리는 지난달말 투자환경세미나에서 『루마니아 개혁의 성공여부는 외국자본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당분간 국민고통 가중 급속한 개혁에 따른 단기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우선 가격자유화에 따라 치솟는 물가. 올들어서만 이미 두배 가까이 올랐다. 정부가 이중환율구조를 고치겠다고 하자 공식환율도 연일 상승세다. 작년말 1달러당 3천7백레이에서 이달초 8천5백레이까지 올랐다. 저축증가로 다소 안정세로 돌아서 최근 3천3백레이 수준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지고 있다. 취임 3개월 남짓된 콘스탄티네스쿠 대통령은 지난달초 국민들에게 『올해 루마니아 경제는 국내총생산이 3%정도 줄고 물가상승률은 적어도 100%, 실업률은 6.3%에서 12%로 높아지는 등 고통이 가중될 것』이라고 밝혀놓은 상태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7년을 허송세월했다』면서 『개혁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고 말한다.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루마니아는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전 정권 때문에 아직 공업생산의 90%를 국영기업이 담당하고 경제전체의 60%가 정부통제 아래 놓여있다. ▼ 국제적 신임 점차 확보 ▼ 전 정권에선 체제전환은 말뿐이었고 고위관리나 국영기업체 간부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흔들릴까봐 기업사유화를 은근히 방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의 루마니아는 한시름을 덜었다. 새 정부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에 대해 세계은행(IBRD)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만족을 표시하면서 차관제공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