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훈 기자] 파란 잔디위를 질주하는 알몸의 극성팬과 이를 뒤쫓는 경찰…. 제2회 월드컵 7인제 럭비 선수권대회 멜로즈컵 결승이 벌어진 지난 23일의 홍콩 국립경기장. 이날도 어김없이 7만관중이 가득찬 스타디움에 알몸의 「타잔」2명이 나타났다. 격렬하기로 소문난 럭비. 거친 탓인지 팬들의 관전 태도 역시 광적이다. 경기장 곳곳에 설치돼 있는 공식 후원사의 맥주 간이 판매대는 늘 성시다. 경기중 휴식시간이면 운동장을 진동시키는 「마카레나」음악에 맞춰 온몸에 보디페인팅을 한 팬들의 디스코 파티도 벌어진다. 럭비 경기에서 스트립 쇼는 이미 오래된 전통. 벌거벗고 경기장을 활보한 사람은 홍콩 국내법에 따라 24시간 구류 처분을 받기 때문에 이날도 마지막 결승 도중 스트립이 벌어졌다. 이들을 처리하는 경찰의 태도 역시 가관. 경찰은 알몸의 관중이 남성일 경우 달려나오는 즉시 담요로 몸을 감싸 데려가지만 여성일 경우는 그라운드를 마음껏 질주하도록 오랫동안 내버려둔다는 것. 이뿐이 아니다. 휴식시간이면 홍콩 스타디움의 거대한 2개의 전광판에는 팬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계속 자막으로 떠오른다. 『빌! 당신 어젯밤 어디서 잤어요?(빌의 아내로부터)』 『여보 결혼 기념일을 축하해요, 인생은 47세부터』 『나와 결혼해 주겠소, 메리?』 등등 팬들의 진솔한 심정이 절절하게 이 전광판 자막을 통해 표현된다. 지난 76년부터 7인제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는 홍콩은 7인제 럭비의 메카. 시즌이면 호텔마다 10∼30%까지 가격을 올려받지만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방이 모자라 아우성이다. 미처 숙소를 구하지 못한 럭비 마니아들은 사흘동안 24시간 편의점이나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면 일찌감치 경기장으로 나온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경기가 끝났음을 「게임 세트(Game Set)」 혹은 「타임 아웃(Time Out)」으로 부르지만 럭비는 「이제 모두 한 편」이라는 의미의 「노 사이드(No Side)」로 표시한다. 노 사이드가 선언되면 경기장 중앙에서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승자는 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는 것이 전통. 팬들 역시 어느 특정팀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