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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스핏파이어 그릴」,여자의 우정 진한 감동

입력 | 1997-03-27 07:40:00


[박원재 기자] 돈 스타 특수효과….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의 논리는 단순하다. 고액 개런티로 인기절정 배우를 내세우고 현란한 눈속임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세계 흥행시장을 지배하는 비결이다. 그 반대편. 저예산 무명배우, 그리고 감동. 이같이 독립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스태프의 열정으로 메이저 틈새를 비집는다. 독립영화 제작진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변방」과 「중심」의 경계가 흔들리고 있다. 29일 개봉되는 「스핏파이어 그릴」(리 데이비드 즐로토프 감독). 스타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 적은 돈(3백만달러)으로 알뜰하게 꾸려냈다. 「헝그리 정신」에 바탕을 둔 독립영화의 숨결이 느껴지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의외로 대중적이다. 시골 길리드의 레스토랑 스핏파이어 그릴(The Spitfire Grill). 세여인이 만난다. 늙은 식당주인 한나(엘렌버스틴분)와 조카며느리 셀비(마르시아 게이 하든), 교도소에서 가출옥해 이곳에 정착한 퍼시(엘리슨 엘리어트). 이들은 「남자」 때문에 상처받은 인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퍼시는 소녀시절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악몽에 시달리고 셀비는 남편의 멸시를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퍼시와 셀비의 정신적 대모인 한나 역시 월남전과 아들에 얽힌 아픈 비밀을 갖고 있다. 한나가 식당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할 즈음, 퍼시는 에세이 콘테스트로 새 주인을 구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참가비 1백달러를 받는 대신 식당주인이 돼야 할 절실한 이유를 대는 이에게 운영권을 넘겨주자는 것. 편지가 답지하고 돈이 쌓여간다. 그러나 마을 남자들이 이방인 퍼시를 보는 눈길은 곱지 않다. 어느날 밤, 20만달러가 사라지자 의혹은 퍼시 쪽으로 쏠리는데…. 단계별로 서서히 고조된 갈등구조는 끝내 한 여인의 죽음을 맞고서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영화의 표면적 메시지는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적 가치관에 대한 문제 제기다. 나이와 신분을 초월한 여성들의 우정, 자아찾기 과정을 정감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그려낸다. 93년에 화제를 모았던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속을 흐르는 정서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이다. 퍼시와 그 팬에게는 편견 때문에 희생되는 결말이 억울하겠지만 이같은 「역설적 해결」은 「밝은 주제」를 암시하는 것이어서 뭉클한 감동을 준다. 96년 선댄스영화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도, 남녀간의 격정적 사랑도 없는 이 영화에 최우수관객상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