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PD는 누구일까. 최초의 스포츠중계 아나운서는, 최초의 방송기자는…. 올해는 1927년 경성방송국 개국으로 방송 70주년을 맞은 해. 김성호 KBS 방송연수원교수가 「방송문화」 3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나라 라디오방송의 각종 「최초」를 소개했다. 최초의 프로듀서는 최승일. 「보살춤」 등으로 당시 세계적 무희로 불렸던 월북 무용가 최승희의 친오빠다. 최승일은 1925년 체신국이 실시한 시험방송 때부터 라디오 드라마 연출을 했던 「PD원조」 중의 원조다. 최승일의 부인 마현경은 최초의 공채 아나운서로 꼽힌다. 1927년1월5일 실시한 여자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최초의 스포츠중계 아나운서는 박충근. 1933년4월14일자 동아일보는 「조선최초의 조선말 운동실황을 현장 중계방송, 초대의 아나운서는 박충근씨」라고 보도했다. 종목은 전수대학 대 조권(朝拳)의 단체 권투시합. 「이것은 물론 조선말로서의 운동경기실황 중계방송의 첫 시험인 만큼 아직 스포츠 술어가 일반 민중화하지 못한 점이며 아나운서의 미련한 점 등으로 다소 초보의 감이 없지 않을 터이나 그 장래가 크게 기대되는 동시에 스포츠맨에게 복음이라 하겠다」고 당시 기사는 기록하고 있다. 최초의 방송기자는 문제안이다. 1943년 경성방송국 아나운서로 출발했으나 정식 방송취재기자로 발령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최초의 방송관리자는 윤백남으로 기록된다. 일제는 1932년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을 「사단법인 조선방송협회」로 바꾸고 1933년부터 한국어와 일본어 두개 언어로 이중 방송을 시작했다. 이때 일본어 제1방송과와 한국어 제2방송과를 두었는데 이 제2방송과의 초대 과장이 윤백남이었다. TV방송은 1956년 KORCAD TV로 시작됐다. 최초의 TV방송국 국장은 황태영, 최초의 TV연출가는 최창봉이다. 최창봉은 김경옥 오사량 최상현 등이 출연한 드라마 「사형수」를 개국 3개월만에 1시간 가량 생방송했다. 한편 최초의 국산 라디오는 1959년 11월 15일 금성사가 선보인 AS501 모델로 당시 외제 라디오 3만3천환보다 싼 2만환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초의 TV수상기는 1966년8월1일 금성사가 내놓은 흑백세트. 19인치 진공관식 탁상형으로 당시 판매가격은 6만8천3백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