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만주땅에서 옛 고구려인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적과 마주칠 때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된다. 활달하고 역동성이 뛰어난 고구려문화의 백미는 중국 길림(吉林)성 집안(集安)시에 몰려 있는 고분벽화들이다.
28일자 본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 가운데 문화재로서 가치가 매우 높은 장천(長川)1,2호 고분의 벽화가 송두리째 뜯겨져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접하고 우리는 충격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아무리 우리 땅과 멀리 떨어진 외국에 위치한 문화재라지만 사전에 우리 나름대로 이같은 사태에 대비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과 함께 자괴감도 느낀다.
당장 급한 과제는 조속히 범인을 잡아 잃어버린 벽화를 회수하는 일이다. 고구려벽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의 입장에서도 소중한 문화재다. 이집트 중국 등 세계적으로 고분벽화가 많이 전해내려 오지만 고구려의 것은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우수한 회화양식을 지니고 있다. 중국학자들도 고구려벽화를 한(漢)나라 이후 고분벽화의 발전 및 변천상황을 연구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해 오고 있다.
도난당한 벽화가 아직은 중국내에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범인 색출에 중국당국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줄 것을 희망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도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중국측에 그 뜻이 전달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현재 만주지역에 다량으로 남아있는 우리 문화재들은 중국의 개발정책과 관리부족으로 인해 갈수록 훼손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집안지역만해도 고구려벽화고분이 20여기나 있지만 무용총의 경우 과거 촬영한 사진과 비교해 볼 때 벽화표면에서 많은 부분이 떨어져나가 그림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발해 유적지인 흑룡강(黑龍江)성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도 성곽 바로 옆에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고 유적지 일부가 도로나 경작지로 바뀌었다는 소식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중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현황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중국과 협력해 적절한 보존대책을 강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중국내 우리 문화재 보호문제는 자칫 잘못하면 중국당국의 감정을 자극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중국측에서는 전부터 일부 국내 학자들의 「만주는 우리땅」식 역사접근에 불쾌감을 표시해 왔고 이로 인해 우리 학자들이 중국측의 협조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국가간 학술교류의 경우 대학이나 연구소 등 민간 차원의 활성화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부차원에서도 중국측에 우리 문화재에 대한 공동연구 및 보존문제를 제의하고 필요하다면 재정지원까지 맡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두나라 학자와 문화재 전문가들로 상설기구를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