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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에세이]「신사유람단」과 장보고

입력 | 1997-04-01 19:51:00


너도 나도 국제화를 이야기하지만 개인 차원에서 국제화를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성공적인 국제화를 위해서는 사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바깥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아직도 「나는 한국인이다. 국내에서는 그래도 최고다」하는 발상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특정지역에 국한되는 국내용 관리자의 옛 모습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글로벌 전략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의 국제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남을 거부하고 내 것만 지키려는 폐쇄적 자세로는 다른 문화를 포용할 수 없다. 의식의 배타성을 타파하고 과감하게 마음의 창을 열어야 한다. ▼ 「글로벌 전략가」 육성을 ▼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에티켓도 겸비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예의범절만 지켜도 되지만 이와 함께 국제적인 에티켓이 몸에 배어 있어야 진정한 국제적인 문화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외국어능력은 기본이다. 스위스 독일과 같이 잘 사는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국민이 모국어 이외에 두 세가지 외국어를 구사한다. 글로벌 전략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두 가지 정도의 외국어는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무한경쟁에 접어든 오늘날 기업 차원에서는 글로벌 전략가를 조기에 육성,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다. 국내시장에만 안주해 있는 국내용 관리자를 글로벌 전략가로 키우기 위해서는 이들을 해외로 내보내 현지의 역사와 문화 풍습을 직접 익히게 하거나 국내 부서에 외국인을 채용하여 이들을 통해 국제적 감각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백년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을 구미에 파견했던 심정으로 국내용 관리자를 조속히 해외에 보내 글로벌 전략가로 육성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기업의 기본적 책임이다. 국제화를 갈구하는 심정 못지 않게 우리에게 또 한가지 필요한 것이 張保皐(장보고)와 같은 개척정신과 활동력이다. 장보고는 신라시대에 당나라에 건너가서 당의 장수까지 되었다. 하지만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생활을 하는 동포들의 참상에 분개한 나머지 고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이라는 해군 진영을 설치했다. 그 때부터 동남아 해상 일대의 해적을 소탕하고 군사적으로 해상권을 장악했다. 우리 상품을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중국 일본상품을 운송 중개했다. 그의 지도력으로 이루어진 국제해운과 삼각무역은 오늘날의 무역에 비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신라 번영에 크게 이바지했다. ▼ 「제2 청해진」 세울 때 ▼ 장보고와 청해진의 명성은 오늘날 스페인 포르투갈과 같은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활약에서 보듯이 우리 민족은 지구상의 그 어떤 민족보다도 우수했고 국제적 감각 또한 탁월했다. 이런 우수한 민족이 당파싸움과 쇄국정책으로 위축된 나머지 오랫동안 우물안 개구리 신세가 됐고 끝내 나라까지 두 동강으로 쪼개지기에 이르렀다. 오늘의 경제전쟁에서 우리의 위치는 1천년전 청해진을 세울 때와 비슷하다. 이러한 때에 민족적 자부심으로 힘을 합해 「제2의 청해진」을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건희(삼성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