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자들이 어제 청와대회담 결과 내놓은 7개항의 합의문중 5개항이 당면 경제대책과 관련된 것이다. 한보사태와 내각제개헌 문제도 각각 여섯, 일곱번째 항목으로 합의문에 포함됐지만 내용은 매우 원론적이었다. 말 그대로 「경제 살리기」가 주의제(主議題)였던 만큼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현 시국상황을 감안할 때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으나 대통령과 여야지도자들이 모처럼 한목소리로 경제와 민생회복을 다짐한 만큼 빠른 시일내에 실질적인 결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종전의 영수회담과는 달리 경제회복을 위한 대(對)국민호소문을 공동으로 내놓은 것도 이례적이다. 정부여당이 경제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정치인들도 자성한다는 말은 진작 나왔어야 할 대목이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거듭 국민에게 사과하는 형식으로 언급한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그런 사과와 반성의 토대 위에서 구체적으로 정치권이 해나갈 일을 적시하지는 못한 만큼 앞으로 행동으로 이를 실천해 보여야 한다. 우선 경제난 극복을 위해 여야와 각계대표가 참여하는 경제대책협의체를 구성키로 합의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원화가치와 국가경쟁력의 급속한 추락으로 경제가 빈사상태에 빠지고 민생 또한 표류하는 마당에 범국가적 경제대책기구를 만들어 회생(回生)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협의체 참여범위에 완전합의가 안돼 구체적 구성방안을 3당 정책위의장에게 미룬 듯 하나 이를 놓고 다시 여야가 충돌하는 일은 없기 바란다. 따지고 보면 이번 회담의 합의사항중 경제대책기구 설립외에 두드러진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 경제위기를 몰고온 여러 문제들이 제목으로 나열됐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의 경제상황이 총체적 위기이며 뾰족한 대책마련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종전과 다른 모습, 다른 내용의 영수회담이었다고 해서 국민들이 그 결과에 금방 기대를 걸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여야가 한보사태는 국회 국정조사와 검찰수사를 통해 철저히 진상을 밝히겠다면서도 「경제의 걸림돌이 돼선 안된다」고 한 대목에도 국민들은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검찰의 정치권 재수사가 임박한 때에 나온 합의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도 경제회생을 위한 정치권의 초당(超黨)적 협력과는 별개로 한보와 金賢哲(김현철)씨 의혹은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르는 문제가 깊이 있게 논의되지 않은 것도 유감이다. 최근의 갖가지 의혹이 정치자금의 불투명한 흐름에서 비롯됐고 그것이 결국 우리 경제를 왜곡시킨 점도 분명히 짚었어야 했다. 이 문제는 여야 지도자들이 한번 더 회담을 갖고 확실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