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서부 호주)의 주도(州都) 퍼스. 이곳의 여름은 「퍼스페스티벌」을 알리는 현수막이 거리를 장식하고 스완강에서의 형형색색 불꽃놀이로 축제가 시작된다. 금년으로 45회째인 퍼스 축제는 서부 호주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자 호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멀티 아트 페스티벌.
한여름인 2월 중순에 시작, 한달 가량 지속된다. 그러나 거리를 가득 메운 현란한 카니발의 행렬이나 관광객을 겨냥한 눈요기감의 요란한 행사는 찾아볼 수 없다. 사방이 사막 강 바다로 둘러싸인채 깔끔한 고층건물들이 신기루처럼 서있는 이 조용한 도시에 수준 높은 문화의 바람이 한여름의 열기를 삭이고 있다.
[퍼스(호주)〓정성희기자] 지난 2월14일 개막된 올해 퍼스페스티벌의 무대는 언제나처럼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스완강과 콘서트홀 보행자거리 극장 나이트클럽 정원 등 도시 곳곳이다.
축제 기간중 수준높은 공연이나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시민들은 동네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유모차를 끌거나 자녀들의 손을 잡고 축제에 참여한다.
호주를 양분하는 거대한 사막과 인도양 때문에 일종의 「문화 진공」 상태인 퍼스의 시민들도 축제 기간만은 파리 런던 뉴욕의 시민들이 부럽지 않다.
퍼스페스티벌은 연극 음악 무용 전시회 등 예술의 분야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 음악만 해도 최고의 클래식부터 힙팝 재즈, 심지어 아프리카 민속음악까지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올해에는 프라하심포니오케스트라가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등 모차르트의 걸작들을 시민들에게 선사했으며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극단이 「한여름밤의 꿈」으로 영국 정통극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번 축제기간중 11개의 연극과 8개의 클래식공연 및 각국에서 초청된 6개의 현대음악 5개의 무용공연 그리고 5개의 거리공연이 동시다발로 열려 시민들의 흥을 돋웠다. 높은 작품성을 가진 이들 공연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위해 상당수가 무료로 진행된다.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시민의 참여를 특징으로 하는 이 축제의 연원은 신대륙에 새 보금자리를 찾아 건너왔던 초기 이주민들이 건설한 서부 호주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1829년 영국의 제임스 스탠리대령이 퍼스를 가로지르는 스완강에 식민지를 건설한 후 서부 호주는 황금을 찾아 건너온 이주민들에 의해 서서히 현재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무진장으로 쏟아지는 황금 다이아몬드 철광석 등 광물자원 덕에 퍼스는 곧 호주 최고의 부자 도시가 됐지만 사방이 사막과 바다로 둘러싸인 남반구의 도시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문화는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퍼스페스티벌은 1952년 퍼스의 서오스트레일리아대학 서머스쿨 과정의 학생들을 위한 야간 여흥 프로그램으로 출발했다. 퍼스에서 여름방학동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선술집외에 아무 것도 없는 이 곳에서 뭔가 보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이렇게 시작된 축제는 유럽에 대한 향수와 문화적 욕구에 목말라있던 퍼스의 시민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이같은 호응속에서 서부호주정부와 기업들이 본격적인 후원을 하면서 퍼스페스티벌은 바야흐로 국제적인 멀티 아트축제로 정착하게 됐다.
지난 3월6일 퍼스 중심가인 포레스트 플레이스에서는 프랑스 아티스트들의 행위예술 「포세로스」가 진행됐다. 사막의 건조한 공기도 밤이 되면 한결 서늘해지고 남십자성 오리온자리 등 남반구 특유의 별자리가 무대장치가 된다.
퍼스페스티벌은 3월9일 슈프림코트가든에서의 드러매틱한 불꽃놀이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불꽃놀이는 바르셀로나올림픽 폐막식을 장식했던 프랑스의 연출팀 그룹 F가 맡아 클래식음악과 첨단 기술이 어우러지는 장관을 연출했다.
4만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피날레 공연이 끝나면서 퍼스의 밤공기는 벌써 싸늘해지고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