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서울 동부경찰서 수사2계. 자그마한 몸집의 한 젊은이가 깃을 바짝 세운 트레이닝복 상의에 앳된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눈자위는 붉게 충혈됐으나 얼굴표정은 담담했다. PC통신을 통해 8백여명에게 1천여장(3천5백여만원 상당)의 음란CD와 컴퓨터프로그램을 판 혐의로 붙잡힌 이모씨(27·회사원). 그는 『전문적인 영업을 목적으로 한 짓은 아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컴퓨터에 빠진 이씨는 삼수끝에 국내 최고의 명문인 서울 S대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다. 타고난 두뇌에 외곬의 집착이 빛을 발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컴퓨터도사」로 이름을 떨쳤다. 이씨는 이때부터 미국 버클리대에 유학, 박사학위를 따겠다는 뜻을 품었다. 3년내내 과외지도로 3천만원을 벌었다. 그러나 유학가서 공부에 전념하는데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4학년 때인 지난해 3월 고교2학년 때 학교운동장에서 주워 보관해온 동창 김모씨의 주민등록증을 이용, 6개의 차명계좌를 만든 뒤 김씨 명의로 PC통신에 가입했다. ID는 자신의 「아메리칸드림」을 의미하는 「BeRKeLeY」. 통신거래로 1백여개의 음란CD와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들인 뒤 이를 다시 복제해 똑같은 방식으로 PC통신을 통해 팔았다. 1년 동안 1천5백여만원을 벌었다. 이씨는 대학졸업 후 지난달 중순 굴지의 대기업 D통신에 입사한 이후에도 음란CD장사를 멈추지 않았다. 퇴근후 밤늦게 CD를 복제하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소포를 부치는 나날이 계속됐다. 이씨는 『「단골」들로부터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씨의 옥탑방에서 복제CD 3백여장과 공(空)CD 3백여장을 발견했다. 『유학도 좋지만 배운 사람이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벌면 되겠느냐』는 담당형사의 질책에 고개를 떨군 이씨의 등뒤로 「엘리트공학도의 꿈」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이철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