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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현장]실험극장의 「에쿠우스」…서울혜화동 두레극장

입력 | 1997-04-04 09:09:00


무대는 객석 중앙을 길게 관통하고 있다. 연극아닌 배구나 권투 등 치열한 운동경기를 관람하듯이 관객은 무대를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앉아야 한다. 실험극장이 지난달 19일부터 서울 혜화동 두레극장에 펼쳐놓은 「에쿠우스」에서 이같은 무대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박동우씨가 만든 이 무대는 문명과 야성, 이성과 본능, 톱니바퀴같은 사회와 광활한 자연의 날카로운 대립을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험극장 「불후의 명작시리즈」 첫편으로 기획된 이 작품은 75년 한국초연 때부터 「말 여섯마리의 눈을 찔러 죽인 소년」이라는 충격적 소재로 관심을 모았다. 그래서 소년 앨런을 맡았던 강태기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등 배우들은 하나같이 스타로 발돋움했고 신극사상 최장기공연 최다관객동원이라는 「에쿠우스 신화」를 낳기도 했다. 90년 공연에 이어 7년만에 재연출을 맡은 김아라씨는 이 작품의 초점을 충격적 소재 그 자체로부터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앨런의 대립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관객사이를 가로지른 무대는 바로 이같은 대립의 상징이다. 『왜 말의 눈을 찔렀을까』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다이사트(정동환 조명남 분)를 지켜보며 관객은 자신이 다이사트가 된 듯한 독특한 관극체험을 하게 된다. 정상과 지성 그리고 비겁으로 똘똘 뭉쳐있던 그는 「내가 집에 앉아 반인반마신(半人半馬神)의 그림을 보고 있을때 스스로 반인반마신이 되어 들판을 달렸던」 앨런(정유석 지춘성)에게서 충격을 받는다. 앨런을 통해 현대인이 잃어버린 격정의 세계, 삶의 원초적 열정을 알게 된 그는 지금까지의 세계관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때 말의 탈을 쓴 여섯명의 배우가 무대바닥과 연결된 쇠줄을 어깨에 메고 다이사트가 서있던 자리, 즉 「입장」을 육중하게 움직여 놓는 장면이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다. 다이사트는 앨런 앞에 무릎을 꿇고 관객은 극심한 혼돈에 휩싸인다. 『내가 딛고 있는 입장은 과연 정상적인가』하고. 『난 저 애를 정상적 남편으로 만들수 있어… 저 애는 심지어 자신의 살점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플라스틱 제품이라고 믿게 될거야… 하지만 저 애의 정열은? 정열이란 의사에 의해 파괴될 수는 있지만 창조될 수는 없는거니까』 길게 이어지는 다이사트의 고뇌는 현대인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좋은 직장 아파트 새차를 갖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사는지. 고교시절 초연을 본 뒤 22년만에 「에쿠우스」를 다시 보았다는 박진훈씨(39·회사원)는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앨런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나는 다이사트로 변해있었다. 앞으로 22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동아일보 주최로 공연은 20일까지. ☎02―453―7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