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金賢哲(김현철)씨 비리의혹과 관련, 한보 이외의 문제로는 사법처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면 시중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일이다. 한보 특혜대출 비리와 관련없는 이른바 「별건(別件)」이란 게 무언가. 국가 주요정보를 사물화(私物化)하고 정부 주요인사는 물론 민방(民放)선정 등 이권에도 개입해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이 아닌가. 현철씨를 직접 불러 본격수사도 시작해보지 않은 채 어떻게 봐주자는 말부터 할 수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현철씨의 최측근으로 지금 검찰이 집중조사하고 있는 朴泰重(박태중)씨 문제만 놓고보아도 그렇다. 93년 현정부 출범 이전까지 빈털터리나 다름없던 그가 1년사이 80억원대의 재산을 모으고 예금통장에 여러 업체의 돈이 수시로 입금된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현철씨의 대리인으로 대선자금을 관리했기 때문에 그런 치부(致富)가 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철씨와 그의 연결고리 등 진실을 규명해 금품수수 등 잘못이 드러나면 응분의 처벌을 해야지 수사가 진행중인 때에 정치권이 이러쿵저러쿵 봐주자는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신한국당 朴寬用(박관용)사무총장은 4일 『현철씨의 인사개입 등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은 되지만 사법처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사개입 문제가 현철씨 의혹의 모두인 양 말하는 것도 틀렸지만 도대체 누가 그런 의견을 제기하고 있는지 주체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검찰이 수사중인 사건에 여권의 희망사항을 넌지시 전달해 영향력을 행사하자는 건지 아니면 이미 그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옳은 자세가 아님은 분명하다. 여권이 현철씨의 사법처리 불가피 입장에서 사법처리 불가(不可)방침으로 선회하는 듯한 조짐은 사실 그간 여러차례 보였다. 李會昌(이회창)신한국당 대표가 『부자지간의 문제는 남이 뭐라 말할 수 없는 만큼 감안해 줘야 한다』고 했다거나 여권 일각에서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면 대통령이 하야(下野)하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고 우려한다는 얘기도 나돈다. 현철씨 의혹을 부자지간의 문제로 축소하는 건 옳은 시각이 아니다. 또 진실규명이 하야나 헌정중단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너무 앞서 나간 것이다. 오히려 의혹을 덮고 쉬쉬할수록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한보와 현철씨 의혹이 청와대 여야지도자회담 이후 정치적 타협의 길로 가는 듯한 조짐이 보이는 것을 우리는 경계한다. 의혹의 매듭을 다 풀어 국민 앞에 공개하지 않는 한 현 위기는 해소되지 않는다. 『제 자식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우겠다』고 대통령 스스로 국민들에게 다짐한 정신을 여권은 되새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