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昌(이회창)신한국당대표위원과 金大中(김대중)국민회의총재간의 「3.26 밀회(密會)」는 몇몇 대목에서 두사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짐을 확인한 자리였다. 특히 김총재가 『신한국당과 국민회의, 이대표와 내가 내각제를 안된다고 하면 이대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대목은 대선 이전의 내각제 개헌 저지를 위해 이대표에게 「제휴」를 제의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대표로서도 이같은 제의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날 밀담후 이대표의 표정이 몹시 밝았다는 측근들의 얘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개헌문제에 관한 한 김총재와 이대표의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총재나 이대표나 모두 다른 대선주자들에 비해 대선을 통한 집권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김총재로서는 이대표와의 연대로 당장 내각제 개헌이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실히 못박아 자민련측의 연내 개헌에 대한 기대를 불식시키고 야권후보단일화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계산도 했음직하다. 이대표로서도 김총재와 함께 현행 헌법대로 대선을 치른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할 경우 당내 「반(反)이회창」 세력이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권력분점논의를 잠재울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한 것 같다. 이대표가 김총재에게 대선에서의 사상문제 불거론을 약속하면서 넌지시 『한보사태를 국정조사의 틀에 따라 처리하도록 김총재가 지도력을 발휘해달라』고 주문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즉 이대표는 김총재의 색깔논쟁에 대한 피해의식을 덜어주는 대신 자신의 고민인 金賢哲(김현철)씨 문제등 한보문제의 「적정처리」를 김총재에게 협조요청한 셈이다. 이대표는 자신의 「법대로」 이미지 손상을 감수하더라도 민주계의 반발 등 당내 입지를 고려, 현철씨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해놓은 상태다. 같은 맥락에서 김총재가 대선에서의 「파인플레이」와 대선자금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제안한 것은 이대표의 주문에 대한 「화답(和答)」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그러나 김총재와 이대표의 연대는 한시적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각제 개헌 논의가 사라지면 이들은 등을 돌리고 문자그대로 「혈전(血戰)」을 벌이는 처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합의는 본질상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한보사태에 대한 국회청문회와 검찰재수사 과정에서 이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떤 악재가 돌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김총재와 이대표의 합의는 작지 않은 정치적 파문을 유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야권공조의 전도(前途)가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야권공조가 쉽사리 깨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김총재는 대선을 의식해 金鍾泌(김종필)자민련총재와의 공조를 가능한 한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번 양자밀회에서 드러난 또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대표의 「공격적 정치행보」다. 이번 밀회도 이대표측 제의로 이루어졌다는 게 김총재측 주장이다. 다시말해 이대표가 자신의 위상확보를 위해서는 「파격(破格)」과 대담한 정치적 타협도 서슴지 않을 만큼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임을 드러낸 셈이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