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화제의 책]「NO라고 말할수 있는 중국」

입력 | 1997-04-08 08:27:00


『여기 「페이퍼」 한장 갖다주게』 북경의 한 식당에서 중국인 신사가 웨이터에게 하는 말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동방미디어)은 정작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됐는데도 버젓이 「페이퍼」를 입에 담는 중국인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비판에서 출발하고 있다. 포크와 나이프를 서툴게 사용하는 중국인은 우스꽝스럽고 외국인의 서툰 젓가락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못마땅하다. 중국인은 먼 옛날 철기를 사용한 이래 나이프와 포크를 쓴 적이 있으며 단지 서양사람들은 이 역사적 「유물」을 지금까지 줄곧 쓰고 있을 뿐이라는 것. 고도로 숙련된 손의 기술을 요구하는 젓가락은 칼이나 포크가 갖지 못하는 세련된 예술성과 함께 평화에 대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며 중국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부인 힐러리에 대한 원색적인 반박 비판도 있다. 그가 중국의 무자비한 산아제한 정책을 비난한 데 대해 『중국의 인구문제는 「일개 여편네」가 떠들 일이 아니다』고 잘랐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는 「군사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전쟁불사론에 이르러서는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중국의 군사훈련으로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악화하자 미국이 태평양함대를 파견한 것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중국은 미국과 치른 한국전과 월남전 등 모든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 기자인 쏭챵 등 젊은 지식인 5명이 공동집필한 이 책은 지난해 출간되자마자 중국의 식자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이후 최대의 베스트셀러라는 이야기도 있다. 노골적이고 직선적인 반미감정을 담아 책의 출간과 이상열기가 하나의 국제적 사건으로 관심을 모았다. 영국의 BBC방송은 『테러리스트들과 전쟁주의자들까지 찬양하는 논조에 경악할뿐』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책은 지난 80년대 후반 출간된 화제작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제목을 차용했다. 「…일본」의 저자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유치한 국수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내에서도 비판이 없지 않다. 반미정서에 영합한 상업주의의 소산이라는 지적이다. 이 책에 나오는 정치 유머에서는 미국의 「시답잖은」 무역제재 협박에 대한 중국인들의 냉소적인 반응을 읽을 수 있다. 백악관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한 출입기자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에게 귀엣말로 속삭인다. 『극비사항입니다. 중국 정부가 최근 사학자 통계학자 골동품전문가로 구성된 대규모 조사단을 미국에 파견할 예정이랍니다. 중국의 4대발명품인 화약 종이 나침반 인쇄술이 미국내에서 제대로 「지적재산권」 보호를 받고 있는지 철저하게 따져볼 작정이라는군요』 이에 질겁한 클린턴이 무역대표부가 준비하고 있던 대중국 무역보복리스트를 전부 취소하라고 긴급지시를 내렸음은 물론이다. 〈이기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