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 라스푸틴 등 러시아 작가 열두명의 서정성 깊은 단편들을 모았다. 러시아 농촌이 집단화해 가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향수, 사회주의 현실에 의해 빛을 잃어가는 도덕적 전통이 주된 소재다. 감정을 절제하고 서정적 필치로 풀어나간 시적인 단편 모음이다. 작가와 작품들을 선정한 문학평론가 게오르기 츠베토프는 『슬픔과 분노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네크라소프의 말을 인용하며 현대 러시아의 파란 많은 역사를 슬픔과 사랑으로 바라보는 글들이 담겨 있다고 소개한다. 크루핀의 단편 「비밀 편지」는 한 중학생의 운명을 통해 전체주의 정권이 확립한 질서의 불합리를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사려 깊고 영리한 농촌의 젊은이들이 어린 시절의 철부지 장난으로 눈물과 고통 속에 청춘을 보내야 했다. 아스타피예프의 「가을의 근심 그리고 기쁨」은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향수를 그리고 있다. 함께 일하고 즐기는 명절날의 분위기, 오랜 세월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월동 준비의 관습, 그때마다 내레이터의 가슴을 뛰게 했던 양배추 절여 담그기 등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이 선집의 마지막 작품은 야쉰의 「나는 마가목 열매를 대접한다」. 마가목 나무는 자작나무와 함께 러시아를 상징하는 나무. 이를 찬양하는 많은 시 노래 그림이 만들어져 왔다. 츠베토프는 이 나무 열매의 맛을 본 사람들처럼 이 작품집이 은은한 향기로 우리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니콜라이 루브초프 등 지음/최선 등 옮김(열린책들·9,500원) 〈권기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