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태수 리스트」에 올라있는 정치인들을 전원 소환조사하기로 한 것은 이들에 대한 조사를 더이상 미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이 조사의 적기(適期)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 등이 정치인들에 대한 금품제공 사실을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에서 사실상 공개적으로 시인한데다 해당 정치인들도 조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총회장 등은 청문회 과정에서 정치인들에게 돈을 준 사실을 사실상 시인했으며 이들에게 모종의 청탁이나 대가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검찰은 이들에 대한 조사를 계속 미룰 경우 검찰이 정치인들을 봐주려 한다는 의혹에 휘말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치인들 역시 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옥석을 가려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사실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1차 수사와의 차별성을 인정받기 위해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내심 원했지만 정치인의 경우 소환 자체가 정치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해왔다. 그러나 검찰이 일단 공식수사에 나선 만큼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는 상당히 철저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치인들이 정총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의 액수, 시점, 한보에 대한 지원이나 대출압력 행사여부 등을 규명하기 위한 집중조사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정총회장 등 한보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확인돼도 이들을 형사처벌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정총회장 등 한보측 인사와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대가성이 없는 순수한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할 경우 이를 일축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선거 직전에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직무관련성을 입증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따라서 먼저 국회 재정경제위 또는 통상산업위 소속 의원과 각당의 중진급 실세들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재경위나 통산위 소속의원의 경우 한보 특혜대출과 각종 인허가비리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돈의 대가성 입증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검찰은 각당 중진 의원의 경우 비록 재경위나 통산위에 소속돼 있지 않더라도 자기당 소속의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태수 리스트」에 올라있는 상당수 의원 가운데 10여명이 재경위 또는 통산위 소속이거나 각당 중진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사결과 정치인들이 받은 돈이 단순한 선거자금이나 정치후원금인 것으로 확인될 경우 국회 윤리위원회에 통보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구체적인 대가관계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국회의원들은 국정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이들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면죄부용 면피성 수사」로 그칠 경우 검찰은 적지않은 비난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하종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