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핀다. 일본 열도를 휘감던 벚꽃 물결이 이제는 한반도를 물들이려 하고 있다. 대부분의 꽃이 떨어질 때는 그 노추(老醜)를 드러내는 것과 달리 벚꽃은 그것조차 아름답다. 화사하다. 잎이 피기 전에 꽃부터 피어났다가 눈보라처럼 사라져가는 벚꽃이다. 그러나 두나라에서 다같이 사랑받는 벚꽃은 같은 꽃이지만 이름이 다르다. 한 나라에서는 벚꽃인데 한 나라에서는 「사쿠라」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쿠라처럼 턱없이 불행한 꽃도 없다. 두 나라의 불행한 과거가 일본인이 좋아하는 사쿠라 꽃에까지 한국인의 증오심을 옮겨가게 만든 것이다. 은어(隱語)로서 「사쿠라」는 지조없이 세파와 이익만을 좇는 비열한(卑劣漢)이다. ▼ 세계향한 첫 공동사업 ▼ 벚꽃과 사쿠라가 봄이면 만개하는 두 나라, 한국과 일본. 그러나 지금도 앙케트 조사를 하면 서로가 싫어하는 나라의 맨 윗자리로 앞다투어 올라오는게 한국과 일본이다. 그 두 나라가 국교 정상화 이후 최초로 「공동」으로 이룩하고자 하는 세계인과의 약속이 2002년 월드컵이다. 공동개최라는 이 약속이 지구의 축제인 월드컵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서글픈 아이러니이며 두 나라가 안고 있는 업보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유치 경쟁이 뜨거웠을 때부터 생각했었다. 과거라는 족쇄를 끌며 우리는 인류의 축제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한일간에 월드컵 공동개최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최초의 언론이 아사히신문이었다. 그것도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던 바로 그날의 사설이었다. 그 아사히신문과 동아일보가 펼치는 5개 공동사업의 첫 시작이 대학선발 축구경기다. 두 나라의 양심과 양식을 대변해온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내일의 주역들을 위해 한판의 「싱싱한 멍석」을 까는 것이다. ▼ 내일을 위한 「멍석」 마련 ▼ 서로의 이해와 인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만남이 있어야 한다. 만나는 것 외에 두 나라를 이웃으로 만들어 가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4년여의 일본 생활에서 가슴과 피부로 느꼈던 것이었다. 한국사람도 쌀로 지은 밥을 그것도 젓가락으로 먹느냐고 눈을 둥그렇게 뜨는 일본대학생을 나는 만났었다. 그들이 과거사를 바르게 인식하기를 바라는 건, 절망에 가까웠다. 그 만남의 하나로 이제 젊은 지성들을 위해 푸른 잔디구장이 펼쳐진다. 도쿄 국립 니시가오카 축구경기장에서 대학선발팀이 한판을 겨룬다. 두 나라의 젊음과 지성의 상징이 만나는 자리. 정열과 패기로 들끓는 두 나라 청춘의 만남이다. ▼ 어두운 과거 털어버려라 ▼ 다른 날과 다름없이 4월13일은 밝을 것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싱그러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날을 늘 오는 4월의 어느 아침이 아니라, 한일간에 새로운 인식과 화해의 장이 열리는 그 밑그림을 그리는 날로 기억하고 싶다. 아침이 시작되는 동쪽이 아니다. 「서쪽 언덕」이라는 뜻의 「니시가오카」경기장. 거기에서 새날이 오고 있음을 믿기로 하자. 늘 새것은 꽃이 피듯이 그렇게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온다. 이번 한일대학선발 축구경기는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개최를 위한 한걸음만이 아니다. 이런 만남들이 이어지고 넓혀져서 새롭게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가 자리잡아가는데 하나의 기둥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염원이 여기에 있다. 땀에 젖은 몸을 부딪치고, 젊은 열정으로 뜨거운 입김을 내쉬며 두 나라의 내일을 생각하는 젊음이 축구장에서 만난다. 어두운 과거를 털며 봄이 묻어나는 그라운드를 달릴, 두나라 젊음의 한마당을 설레며 기다린다. 한수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