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27위에서 31위로 밀려났고 핀란드는 세계4위, 유럽 최상위로 부상했다. 「무한경쟁」을 물마시듯 외쳐대는 우리와 달리 「경쟁」이라는 말을 적어도 공식구호로 내세우는 법이 없고 청소원도, 장관도 다같이 8주일의 연가(年暇)를 누리는 핀란드의 꾸준한 경쟁력 신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웃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독립을 이룩하고 유지해온 핀란드의 지정학적 환경이나 부존자원은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5백만명이 겨우 넘는 인적자원 뿐이다. ▼정직4이 존경받는 사회▼ 핀란드 국민성의 두드러진 특징은 정직과 성실과 겸손이다. 사회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리라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는 고객 스스로가 물건을 저울에 달아 값을 매긴다. 그 대신 세금관계 등 유혹이 심한 영역에 대한 관리는 철저하며 거짓말을 하다가 발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사회적 질시는 무섭다. 정직은 일에 대한 성실과 긍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겸손으로 내면화해 방명록에 이름을 쓰는 일에서조차 남보다 앞서기를 꺼리는 핀란드인들의 모습은 그들의 철저한 사회평등의식과 신선한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이미 잃어버렸지만 핀란드인들의 또하나의 큰 특징은 근검과 절약이다. 핀란드인들이 삶을 즐길 줄 모른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유럽의 북쪽 끝에 위치한 이 작은 나라 전체가 여름에는 각종의 국제예술제로 뒤덮이고 인구 2만∼3만명의 작은 지방도시에서도 허름한 옷을 입은 관객들이 알바 알토가 지은 아름다운 극장이나 임시극장으로 둔갑하는 큰 창고 속을 꽉꽉 메운다.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은 한국화 전시회도 열심히 보러 온다. 그들의 근검은 낭비의 철저한 방지로 나타난다. 건물을 한번 지으려면 몇십년 실험해 확인된 기준에 맞춰 몇백년 쓸 것을 생각하며 용의주도하게 설계한다. 쓰던 물건이라도 완전히 쓰레기로 나갈 때까지는 몇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우리처럼 금방 포장한 도로를 다시 파헤치는 일 같은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7개부서 장관이 여성▼ 낭비를 불허하는 핀란드의 사회정서는 인력관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기본교육을 무상으로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각 분야별로 재능있는 사람을 발탁, 양성해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인력유통구조가 매우 합리적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여성의 활발한 사회참여와 정계진출이다. 현재 의장 부의장을 포함해 국회의원의 35%, 외무 국방을 포함한 7개부서 장관, 헬싱키시장, 남핀란드 주지사 등이 여성이다. 그중 국회의장은 현직 대통령과 인기를 다투는 강력한 차기 대통령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의 교육수준은 남녀가 비등하고 학교성적은 여성이 우월한 경우가 많지만 여성고급인력의 활용은 국회의원이나 장차관급에서 30분의 1정도에 머무는 것이 우리나라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두뇌만 아니라 몸과 끈기로 우리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시대에는 뛰어난 두뇌와 책임감을 갖춘 여성에게는 서너명 가족을, 평범한 두뇌에 부패 안일을 일삼는 남성에게는 커다란 공공기관의 관리를 맡기는 등 인력낭비를 계속하면서도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길은 없을 것이다. 핀란드의 경쟁력이 계속 올라가는 것은 사회의 기본이 잘 돼있고 사려가 깊어 국력의 낭비가 없기 때문이지 죽도록 뛰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