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신은 살아 있다. 악덕 기업인이 나라를 뒤흔들고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일삼아도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은 있다. 저녁의 지하철. 술에 취해 토해낸 음식물의 악취가 진동하는 일이 있다. 사람들은 그런 자리를 피한다. 피하는 것으로 그만이다. 웬만한 사람도 구토물 위에 신문지를 덮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구토물을 손으로 치운 시민이 있었다. 동아일보 애독자인 이근엽씨(서울 동작구 흑석3동)는 지하철 안에서 그런 감동적 장면을 목격하고 촬영, 그 사진과 사연을 최근 동아일보에 보내왔다. 교수로 정년퇴임한 뒤 2년째 몇개 대학에 출강하는 이씨는 지난 2월14일 저녁 서울 충무로역에서 지하철 4호선을 탔다. 퇴근시간 무렵이어서 승객들이 붐볐으나 출입문 근처의 좌석이 비어 그 자리에 앉았다. 고약한 냄새가 나서 살펴보니 누군가가 바닥에 상당량의 음식물을 토해 놓았다. 옆자리 승객의 신문지를 얻어 그것으로 구토물을 덮었다. 그러자 저쪽에서 40대 남자승객이 다가오더니 그 신문지로 구토물을 치웠다.그 승객은 오물을 손으로 퍼담다시피 했다. 그 승객은 신문지를 더 얻어 오물을 깨끗이 치운 뒤 열차가 멈추자 오물을 갖고 내렸다. 이씨도 따라 내렸다. 어디에 사는 누구냐고 물었지만 그 승객은 『나 한사람 봉사하면 모든 승객이 편하리란 생각에서 했을 뿐』이라며 대답하지 않았다. 몇번이나 그 승객을 설득, 안양에 사는 이창우씨(47)라는 사실을 겨우 알아냈다. 〈양영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