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인간이 숙명적으로 겪어야 하는 최고의 고통. 사랑하는 모든 것과의 이별. 그러나 동시에 고단하기 짝이 없는 현세의 삶과 온갖 근심으로부터의 해방. 옛날 사람들은 어떤 시각으로 죽음을 마주했을까. 죽음은 시대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이 책은 라틴 기독교 문명의 미술사적 전통에 근거해 죽음 이미지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 논리 전개의 매개체는 도상(圖像·이콘). 묘지 묘비 그림 조각 등 죽음 언저리에 기념품처럼 장식돼 있는 유물 유적들이다. 그것들이 실마리를 제공한다. 로마 도시국가 시대, 묘지는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이름없는 서민의 시신은 아무런 절차없이 시 외곽 오물처리장에 버려졌다. 죽음에 대한 표현도 저승의 신비보다는 현세의 향락쪽에 더 기울어져 있었다. 당시 모자이크화에 그려진 해골은 씨익 이빨을 드러낸 채 웃으며 「이승의 삶은 짧다. 인생을 즐기라」고 권한다. 기독교가 서구 문명에 착상될 조짐을 보이던 3세기경에 이르러서야 죽음은 성스러운 존재로 인류의 가슴속에 자리잡았다. 기독교도 무덤이 예루살렘을 향한 반면 이슬람교도는 메카 쪽으로 묘를 썼고 중세의 묘지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쓰였다는 식의 무덤 변천사도 흥미롭다. 프랑스 역사학계에서 집단 정신사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는 저자(1914∼1984)는 미술사와 종교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러나 관찰자 주관 위주로 서술된 탓에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정통 역사학 입장에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듯 하다. 〈박원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