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남의 주민등록증을 사고 파는 행위가 전문범죄단에 의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는 충격적 보도다. 나이나 성별을 원하는대로 골라 살 수 있으며 동사무소 직원들까지 관련돼 있다니 그 뿌리가 이만저만 깊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범죄가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다. 평범한 시민들에게 주민등록증이 필요할 때는 은행이나 동사무소에 들를 때 정도다. 크게 쓰일 데는 없지만 혹시나 해서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 주민등록증이 범죄자의 손에 들어갔다고 가정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사진을 바꿔치기한 뒤 신분을 위장해 숨어 다니거나 도난수표의 이서에 사용되는 등 갖가지 범죄에 쓰일 수 있다. 그 피해는 즉각 당사자에게 돌아온다. 과거 단순한 신분증에 불과했던 주민등록증은 은행거래와 신용카드 발급, 부동산 매매 등 국민들의 경제 사회활동에서 갈수록 중요한 자기확인 징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변조된 주민등록증을 사용한 범죄도 다양화 지능화하고 있다. 부동산 사기는 물론이고 범죄자가 남의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받아 해외로 도피하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중국교포들이 국내에 밀입국할 때 가짜 주민등록증이 쓰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남의 주민등록증으로 자동차를 할부구입한 뒤 이를 팔아 돈을 챙기는 신종 사기 범죄가 적발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작업은 민생의 안정과 직결된다. 관계당국은 당장 주민등록증 밀매범죄가 얼마 만큼 널리 퍼져 있으며 변조 또는 위조된 주민등록증이 어떻게 악용되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주민등록증 밀매로 인해 파생되는 제2, 제3의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주민등록증 분실에 무신경한 일부 국민들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지난 한해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 재발급받은 사람은 전체 발급대상자 3천4백3만명가운데 2백46만명이나 됐다. 1백명당 7명 꼴에 해당하는 숫자다. 밀매조직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손쉽게 주민등록증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주민등록증은 어차피 오는 99년 10월이면 마이크로칩이 들어 있는 전자주민카드로 바뀌게 된다. 이 주민카드는 변조 및 위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전자카드 시행이 2년여밖에 남지 않은 만큼 당국은 현행 제도를 손질하기보다는 지속적인 단속과 철저한 관리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