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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업종통합」시대

입력 | 1997-04-15 20:00:00


「메카트로닉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기계(Mechanics)와 전자(Electronics)가 결합한 새로운 기술을 의미한다. 이처럼 최근에는 기술과 기술이 합쳐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 탄생하고 있으며, 기술간의 벽이 무너지면서 업종의 성격도 모호해지고 상품의 개념까지 변하고 있다. 일례로 시계는 정밀기계기술의 결정체로 과거 수백년 동안 기술적 측면에서 큰 변화없이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따라서 정밀공업이 발달했던 스위스가 시계왕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세이코엡슨이 일렉트로닉스 기술을 도입한 전자시계를 만들어내면서 굳건하던 스위스의 지위가 무너지고 그 자리를 일본이 차지했다. 지금 각 산업의 개별 기술들은 성숙할 대로 성숙해 당분간 에디슨 같은 신발명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기술 융합(融合)은 개별 기술이 안고 있는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물론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꼭 없던 것을 발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있던 것을 잘 합치는 것도 새 시대가 요구하는 또 다른 의미의 발명인 것이다. ▼ 기술융합 또다른 발명 ▼ 이러한 기술융합, 업종복합의 사례는 자동차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자동차는 부품가격으로 볼 때 전기전자 제품비율이 30%를 차지한다. 물론 누구도 자동차를 전자제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 모호해진다. 그때 가면 아마 전자기술, 반도체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업종복합은 한 지역을 융성시키기도 한다. 나는 항상 서울의 명동같이 땅값이 비싼 데서 칼국수 식당이 왜 잘될까 의문을 품었다. 결국 백화점과 옷가게, 액세서리점에서부터 온갖 상점들까지 다 있으니까 사람들이 모이고, 칼국수 집도 손님들이 문전성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 첨단산업 업종 복합체 ▼ 21세기 첨단산업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알고 보면 모두 다양한 업종의 복합체다. 의료기기는 광학 정밀 컴퓨터 필름산업이 합친 것이고 우주공학 에너지 전자산업도 기계 전자 소재 및 반도체 등이 결합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 단품, 단일업종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오로지 「하나」에만 매달리다보면 기술융합이 어려워지고 기술과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변화하는 업종의 개념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많은 적자를 내는 기업들을 보더라도 대부분 단일업종의 기업들이다. 반면에 GE같이 기계 전자 가전 반도체 토목 미사일이 다 합쳐 있는 기업은 점차 전에 없던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따라서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종래의 편견은 어느 정도 수정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국가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가 전체가 업종과 산업의 복합 개념을 잘 이해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