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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나라 운명과 「자물통」입

입력 | 1997-04-16 20:04:00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 이후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에게는 「모르쇠」라는 별명이 붙었다. 모르쇠는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전부 모른다고만 할 때 쓰는 말이다. 모든 것을 일절 알지 못하는 체할 경우에는 「모르쇠를 잡다」라고도 한다. 정씨가 청문회에서 한 「모른다」 「기억이 없다」라는 말은 뻔히 알면서도 딱 잡아떼는 농담으로 시중에 유행하고 있다 ▼정씨가 우반신 마비증세로 입원한 것은 개인적으로 볼 때 어딘지 측은한 느낌도 유발할 수 있는 일이다. 청문회에서 자신은 물론 아들 譜根(보근)씨가 특위 위원들에게 호된 대접을 받아 분한 나머지 발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일반의 시각은 정씨의 건강상태에 대한 동정보다는 입원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 같다. 모르쇠인 그가 아예 입을 봉해버리려는 「꾀병」이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정씨는 지난 91년 수서 사건 때도 당뇨병과 심장병 등을 이유로 병보석을 신청한 적이 있다. 95년 盧泰愚(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 때도 뇌졸중을 일으킨 일이 있다. 그때 언어장애 증세를 보여 구속집행 정지로 풀려난 그는 그러나 곧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 활동이 오늘까지 계속되어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그가 이번에도 일부러 칭병(稱病)에 기대는 건 아닌지 의심을 살 만도 하다 ▼담당의사에 따르면 처음에는 정씨가 실어증이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의사교환에 큰 어려움이 없어 다음달 2일로 예정된 2차 청문회에 큰 무리없이 출석할 수 있을 것같다. 다만 지금은 의식이 뚜렷한 정씨가 말을 하려 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입원을 계기로 아예 「자물쇠」가 된다면 큰일이다. 마치 나라의 운명이 그의 입 하나에 달려있는 듯한 현실이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