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對北) 정책의 초침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남북한과 미국의 설명회 후속회의를 하루 앞둔 15일 북한에 대규모 군축을 촉구함으로써 그동안 잠복하던 대북 정책의 가닥을 단숨에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니컬러스 번스 대변인은 이날 대북 추가 식량지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1백만명이 넘는 북한군이 과다하다고 지적하며 주민들에게 자원이 배분될 수 있도록 군을 축소하라고 촉구했다. 비록 그는 누누이 식량지원이 인도주의적 고려 때문이라고 강조했지만 식량지원을 지렛대로 북한의 강고한 대군(大軍)정책을 약화시키려는 미국측의 의도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날 그의 북한 관련 발언은 북한이 최근 1백20명의 장성을 진급시킨 것을 두고 『세계가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그런 규모의 군을갖고 있는 데 대한 우려가 없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반응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는 식량지원에 대한 반대급부로 군축을 요구한 차원을 넘는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즉 미국이 이미 북한의 4자회담 수락을 전제로 검토해 놓은 대북정책의 윤곽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의 기존 대북정책인 연착륙 정책은 △북한 체제의 안정 △대외개방 유도 △체제 개혁 요구 등 3단계로 짜여져 있다. 또 단계별 정책 목표의 실행은 북한의 군축과 밀접히 연계돼 있다고 미국측은 보고 있다. 이유는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을 군에 쏟아 붓는 이상 북한의 체제 안정은 요원할 뿐더러 대군은 대미(對美) 또는 대외 개방에 불만을 품고 있는 군부의 발언권을 계속 유지시켜 연착륙 정책을 어렵게 만든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군축 문제는 「상호신뢰구축」이라는 포괄적인 틀 안에서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는 실현되기 어려운 문제다. 그만큼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북한의 군부가 군축요구를 사실상 무장해제 요구로 해석, 내부선동용으로 이용할 우려도 지적된다. 따라서 국무부의 요구와는 달리 지난 90년 남북한이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교류협력 긴장완화 군비감축 순으로 북한의 군축이 진행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