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이라는 말은 서로 상치하는 것이 공존한다는 뜻이다. 우리들 주위에는 대립되는 것, 모순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자율과 규제, 시장개방과 산업보호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시장을 개방하면 미성숙한 산업이 타격을 받고 그렇다고 국내시장을 보호하면 국제경쟁력이 약화된다.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어느 한쪽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쪽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다투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한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낮은 원가와 높은 품질, 본업 중심 경영과 다각화 경영 등은 상충하는 목표다. 예를 들어 다양한 제품을 만들려면 제조원가가 비싸진다. 그래서 값싸고 동시에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일은 한번에 잡을 수 없는 「두 마리 토끼」처럼 보인다. ▼ 「양자택일」은 끝났다 ▼ 지금까지 기업들은 둘 중 더 낫다고 생각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두가지 중 어느 한가지만 뛰어나도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양자택일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값도 싸고, 품질도 좋고, 종류도 다양하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제품을 원하고 있다. 이제 어느 한 종목만을 잘하는 선수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모순되어 보이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만능선수가 필요한 때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 혼다는 좋은 엔진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혼다의 성공요인은 바로 모순을 슬기롭게 극복한데 있다. 당시 자동차는 고출력과 고연비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엔진의 출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연비를 희생해야 하고 연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엔진의 출력을 낮추어야 한다. 혼다가 둘 중 어느 하나에만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혼다는 없었을 것이다. 혼다는 상충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여 결국 가장 힘세고 기름이 적게 드는 엔진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우리가 하루 빨리 양자택일의 사고(思考), 대립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는 대립되는 것, 모순되는 것들이 융합되는 시대이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것, 서구의 합리성과 동양의 지혜가 만나는 공존과 융합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흑백논리의 전개도 양자택일처럼 똑같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양자택일의 난처한 경지를 모순의 수용으로 극복한다면 흑백논리는 퍼지사고의 수용으로 극복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이분법적 사고, 즉 흑백논리에 따르다보면 이것이 상당히 경직적이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흑과 백 말고도 수없이 많은 색이 있다. 흑과 백사이에도 다양한 명도의 회색이 있다. 이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이 바로 퍼지식 사고이다. ▼ 퍼지식 사고 필요한 때 ▼ 기업의 전략이 양에서 질로 바뀌었다는 것을 흑백논리로 본다면 양을 버리고 질만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퍼지사고로 보면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퍼지사고는 모든 요인을 총체적으로 보고 복합적으로 판단하며 동시에 창조적인 발상을 할 때 가능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회색을 수용할 줄 알아야 미래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건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