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고개숙이면 안되는가. 자고로 남자는 강해야한다는 「알 파치노 콤플렉스」를 뿌리째 뒤엎는 연극 한편이 「고개숙인 남자를 걱정하는 요즘 사회」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남자인 조광화씨가 써서 연출하고 역시 남자인 송승환씨가 제작을 맡은 「남자충동」. 명예퇴직 부권상실 등으로 어깨처진 남자들을 위해 여자가 「기 살리기」에 힘써야 한다는 식의 처방을 이 연극은 단호히 거부한다. 「주먹쥔 남자의 파멸」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남자는 가부장제로 대가없이 얻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좀더 고개숙여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당연히 주인공은 남자다. 안석환씨. 올초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을 받은 그는 「장정」이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에 걸맞게 탄탄한 근육과 시라소니같은 눈빛, 「징한」 목포사투리와 능글맞은 미소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사내로 태어나 성공혀야 허는디, 두 길이여. 하나는 합법적으루다 나라 대통령이나 회사 오너 되는 거이고, 둘로는 조직으 보스가 되는 거인디… 합법이나 불법이나 심을 갖을라고 기를 쓰다봉게 대통령도 되야불고 대부도 된다 이거여, 이』 보스의 길을 선택한 장정이 끔찍하게 위하는 단 하나의 것은 「패밀리」다. 유약하기 짝이 없는 동생 유정과 자폐증때문에 백치같이 된 여동생 달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그러나 『즈그들 위혀서 목숨거는디 그것도 몰루고 나헌티서 다 떠난다고…』하며 한탄할 때는 이미 늦었다. 힘자랑이 주먹질을 낳는 「폭력충동」때문에 장정 자신은 물론 가족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백치동생의 칼을 피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찔려 죽고 마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 작가를 대변하는 인물은 여장남자인 단단이다. 남자되기를 스스로 포기한 단단은 『힘없다고 부끄러운게 아냐… 지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인걸…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면서 다른 소리들을 감싸는 베이스기타처럼…』이라는 말로 이 땅의 남자들에게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도록 제안한다. 지난해 「여자의 적들」을 썼던 조광화씨가 당초 「남자의 적들」이라고 이름붙였던 이 작품을 통해 통렬히 비판하는 것은 다름아닌 가부장제다. 남자가 모든 것을 주관해야 한다며 손아귀에 쥔 권력이 결국은 내려놓을 수도 없는 짐이 되어 남녀 모두를 괴롭히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파멸하는 남자역의 안석환씨가 너무 근사하게 그려진다는 점. 커튼콜 때 그가 음흉한 미소와 함께 알 파치노의 손동작을 흉내낼 때는 객석에서 『꺅』 『오빠』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래서 조광화씨는 『폭력이 멋있어 보일까봐 걱정』이라며 『배우가 너무 잘해도 큰일』이라고 했다. 6월말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02―736―8288 〈김순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