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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무협소설을 좋아하는 사회

입력 | 1997-04-18 20:15:00


▼60,70년대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대부분 무협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시절 학생들은 대여섯권 짜리 장편 무협소설을 책 대여점에서 빌려다 쌓아놓고 밤늦도록 읽느라 잠을 설치곤 했다. 「고수」 「혈도」 「내공」 등 무협소설 속의 생소한 어휘들이 크게 유행하고 실제 무술을 배우기 위해 도장을 기웃거리는 청소년도 있었다.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장풍을 뿜어내는 등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그리도 흥미진진했다 ▼그 이후 독자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던 무협소설이 최근 다시 인기를 끌면서 제2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고 한다. 독자들은 중년층도 있지만 대학생 등 주로 신세대들이다. PC통신의 무협소설 통신방이 큰 인기이고 대형서점들은 젊은 고객들을 위해 무협소설 코너를 따로 설치해놓고 있다. 소설뿐 아니라 무협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도 TV의 고정프로로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옛 무림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무협소설은 모험과 환상, 신비로 가득차 있다.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무인들의 결투장면은 상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모든 무술을 제압할 수 있는 비급을 찾아내 각고 끝에 무공을 익히고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과정은 다른 소설에서 맛볼 수 없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현실이 힘들수록 맞서 싸우기보다는 현실로부터 멀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 보통사람들의 마음이다. 사회생활에 중압감을 느끼는 직장인이나 입시지옥에 허덕이는 청소년들에게 무협소설은 좋은 도피처가 된다. 그러나 요즘 무협소설 붐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난국을 반영하는 현실기피와 대리만족의 측면도 없지 않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절세의 「비급」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