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비자금을 자신 명의로 실명전환해준 재벌 관계자들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편법적인 합의차명(借名)거래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졌다. 합의차명에 의한 돈세탁과 은닉이 합법화돼 금융실명제에 큰 구멍이 생겼다. 정부는 차명거래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실명제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차명거래는 어떤 형태든 떳떳하지 못하다. 검은돈 은닉은 물론 뇌물 탈세 등 범죄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명제관련 규정이 철저하지 못하면 한보사태나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 비자금 소유 같은 부정 부패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 현행 실명제에는 차명거래시 금융기관 직원만 처벌할 뿐 예금주나 이름을 빌려준 사람은 처벌할 수 없는 허점이 있다. 차명거래자는 금융기관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왔으나 이번 대법원 판결로 그것마저 불가능해졌다. 재정경제원은 실명제가 「거래」의 실명 의무화이지 「소유」의 실명을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돈의 소유와 거래를 떼어놓고 어떻게 실명제 기본취지인 사회정의와 조세형평을 구현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합의차명은 자금세탁의 한 수단이다. 이름을 빌려주거나 빌린 사람, 이를 묵인 또는 부추긴 금융관계자 모두를 처벌해야 한다. 남의 명의로 금융자산을 보유해 금융종합과세를 피하면 명백한 탈세다. 세금추징은 물론 형사처벌 등 불이익이 주어져야 한다. 뭉칫돈의 차명거래는 허용해선 안된다. 정부는 이미 실명제 보완에 나선 만큼 차명거래를 막을 방안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정부가 제정하기로 약속한 돈세탁방지법이나 긴급명령의 대체입법 과정에서 차명거래 차단 장치를 마련하기 바란다. 산업자금화를 명분으로 지하자금에 면죄부나 주는 실명제 보완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