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면서 친구의 존재가 더 소중해진다고 하는데 사십줄을 넘어서면서 과연 그런 것같다는 실감이 든다. 가족처럼 정서적으로 얽혀 있지도 않고, 이해관계도 없는 친구들과의 활발한 대화는 때로는 삶의 청량제 역할까지 한다. 식구들 누구의 말도 안 듣던 사람도 친구의 우정어린 충고에는 대개 고개를 끄덕이고 고집이 한풀 수그러들게 마련이다. 동창들과 점심 식탁에서 그야말로 입이 찢어지도록 「시어머니 욕」을 했던 한 친구는 집에 돌아가 자기한테 종일 욕먹은 시어머니를 실제 뵈니까 미안스럽고 죄송스런 생각이 들어 더 잘 해드리게 되더라고 했다. 그나마 그런 것도 삼십대 초반 정도까지의 일. 사십대 중반, 아이들한테 주민등록증이 나오기 시작할 때쯤 되면 그야말로 거품을 품으며 규탄할 시집식구들도 거의 없게 된다. 실제로 시집식구들은 영향력이 사라지거나 대폭 약화된다. 결혼생활에도 그간에 노하우가 어지간히 축적되다 보니 여유와 배짱이 생겨 생활의 불만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건강 재산 등의 노후대책이 대화의 메뉴에 오르게 마련이다. 아니면 젊은날 연애하던 얘기,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주고 받으며 간혹 기억의 가물가물한 곳을 채워 주는 친구의 기억력에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도대체 사람 이름이 통 생각나지 않는다는 둥, 어느 방에 들어갔는데 왜 들어갔는지를 몰랐다는 둥의 수다를 떨며 똑같은 깜깜함에 즐거워하기도 한다. 전업주부인 동창들은 한달에 한번 점심식사 모임을 갖고 직장에 다니는 동창들은 일년에 네번 정도 저녁식사 모임을 갖는데 나같은 프리랜서 작가는 양쪽으로 다 뛸 수 있어 심심찮게 가교(架橋)역할까지 하고 있다. 작년말인가 전업주부 동창들이 「우리도 더 늙기 전에 젊은 애들 많은 곳에 가서 한번 섞여보자」고 하여 저녁식사 후 압구정동의 물 좋은 카페를 하나 골라 우르르 들어갔다. 거기서 주제파악을 못하고 「님그림자」 등의 가요 가곡 등을 부르다가 무대 앞자리에 앉아 있던 청춘남녀들이 우르르 나가버리는 「환난」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후부터 「더 늙기 전에 어쩌자」는 제안은 아무도 하지 않게 되었다. 문득 드라마 대본 속에서 사십대 이상 여성의 대사앞에 이름 대신 으레 있던 ××모(母) 혹은 김씨, 아줌마A 등의 글자가 떠올랐다. 앞으로는 반드시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써야겠다. 최연지〈방송극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