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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살아보니]마리즈 부르뎅/폭탄주 너무 좋아한다

입력 | 1997-04-19 08:37:00


술(酒) 술 술. 한국과 프랑스의 습관 중 완전히 다른 하나는 술문화다. 한국사람과 일을 하다 보면 함께 술을 마실 기회가 가끔 생긴다. 술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런 자리다. 폭탄주는 너무 독해서 마시면 죽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남녀 불문하고 마시고 싶지 않아도 모두 마셔야 한다. 안마시겠다고 버티면 화를 내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분위기를 깨는 「미운 오리새끼」로 눈총을 받는다. 외국인인 나는 그나마 용서가 되지만 이제는 거의 불러주지도 않는다. 건강에도 해로운 술을 왜 취해서 속이 쓰릴 때까지 마시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프랑스인도 술을 자주 마신다. 하지만 술의 양이 아니라 술의 품질을 중시하고 맛있는 술을 즐기려고 한다.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함께 일하는 사람과는. 가끔 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취할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면 다음날 너무 부끄러워한다. 친구들은 『네가 어제 취해서 얼마나 바보같은 행동을 했는지 아느냐』고 손가락질하고 『너는 술이 약하니앞으로술을조금만 마시라』고 분명히 지적한다. 그러니 부끄러워할 수밖에. 학원에서 불어를 가르칠 때의 일이다. 지각을 한 학생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어젯밤 늦게까지 술을 많이 마셔서 아침에 못일어났다』는 설명이었다.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프랑스인인 나로서는 생각해내기도 힘든 대답이었고 정말 그런 이유였다면 부끄러워서 아마 다른 변명을 둘러댔을 것이다. 86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도 놀랐지만 지금도 그런 모습을 보면 여전히 놀란다. 한국인들은 술을 안마시면 재미도 없고 놀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술에 취하면 오히려 재미없을 것 같은데.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좀 놀고 싶어서 한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해 「놀자」고 하면 결국은 술자리로 이어진다. 「놀자」가 「마시자」가 아니라 근교 야외로 피크닉을 가거나 영화나 전시회 구경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주는 친구는 어디 없을까. 마리즈 부르뎅(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