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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항구 길잡이」27년 도남섭 도선사

입력 | 1997-04-21 09:19:00


『50년 바다인생을 마감하려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항상 정직하고 꿈을 주는 바다를 떠날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도선(導船)업무와 작별하고 다음달 초 「육지인생」으로 돌아오는 국내 최고참 도선사 都南燮(도남섭·67·부산항소속)씨. 지난 69년 만40세 나이로 도선사에 발탁돼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최연소 기록을 세운 지 27년10개월만에 정년을 맞았다. 도선사란 항만에 들어오는 외국선박에 탑승, 해당 선박의 선장을 대신해 선박을 안전하게 수로로 이동하거나 접안시켜주는 전문직. 해저의 굴곡이나 해류흐름, 각종 선박의 제원 등에 대해 말그대로 「도사」가 돼야만 가능한 직업이다. 6년이상 선장을 거친 뒤 수십대 1의 국가고시를 거쳐 선발하는 것도 이 때문. 대신 월수 7백만원 이상이 보장되는 고소득 직종이다. 동해항에서 시작, 90년 부산항으로 옮겨와 지금까지 도씨가 인도한 선박은 모두 2만3천척. 대개 한 척당 접안하는 데 1∼3시간이 걸릴 정도로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지만 정년퇴임식을 10일쯤 앞둔 지금까지 무사고를 자랑한다. 아찔한 순간은 수없이 많았다. 『5년전쯤이었을 겁니다. 3만t급 그리스 선박의 엔진을 끄고 전진타력(앞으로 가려는 배의 관성)에 의존해 앞으로 가는데 예상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지 않겠어요』 당황한 도씨가 역추진을 걸자 배가 빙 돌아버렸다. 최후의 수단으로 닻 두개를 모두 내린 끝에야 배는 다른 선박 2m 앞에서 가까스로 멈춰섰다. 이 일이 있고난 후 도씨는 사흘간 꼬박 몸살을 앓았다. 도선사들이 긴장하는 것은 사고가 났을 때 지게 될 형사 민사상 책임을 의식한 것만은 아니다. 항구의 물길 길목에서 대형 충돌사고라도 나면 그 항구는 단박 「죽은 항구」로 소문나고 부두에 쌓인 화물은 「애물단지」로 둔갑한다. 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요절한 동료도 여럿 있었다는 것이 도씨의 회고. 도씨는 지난 9일 남다른 건강을 유지한 끝에 동탑산업훈장을 받았지만 환한 표정은 아니다. 『수출이 걱정입니다. 수출입 물량이 20%나 줄어든 탓에 동료들의 일감도 예년같지 않거든요』 〈박내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