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비극의 뿌리인 「분단」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런 업(業)이다. 분단 비극은 어제도 오늘도 우리몸 도처에서 암세포처럼 우리를 범하고 있다. 분단 장막을 걷으려는 열망을 30여년간 소설에 담아온 중견작가 김원일씨(55). 그가 6.25 전후 분노와 좌절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낮은 데」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낸 대하소설 「불의 제전」(전7권·문학과지성사)을 완간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의 조민세는 바로 작가의 아버지를 모델로 삼았다는 사실. 비극적인 가족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80년 「문학사상」에 연재를 시작한 지 18년만의 일. 원고지 분량만도 1만장에 달한다. 6.25 체험 마지막 세대가 쓴 이 분단소설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에 「무거움이 주는 든든함」을 안겨준다. 「불의 제전」의 무대는 1950년 1월부터 10월까지, 경남 진영과 서울. 이념과 실천을 겸비한 공산주의자 조민세, 행동하는 양심 농민운동가 박도선, 회의와 좌절 등 소극적 성격의 심찬수 등 지식인 농민 지주 등 1백여명의 삶을 통해 이들이 분단과 좌우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절망하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좋은 소설은 어떤 역사서보다도 더욱 생생한 역사적 지식을 가져다준다. 남한의 농지개혁과정, 소작농의 집단 항쟁, 농촌사회의 피폐, 북한의 자칭 「해방구 서울」 통치 실상 등이 고스란히 되살려졌다. 작가의 체험과 끈기있는 취재에 의해. 서울로 떠난 아버지, 엄마 손을 잡고 가슴 조이며 서울을 찾은 나, 밀입북했다가 전쟁과 함께 다시 나타난 아버지, 국군의 서울 탈환으로 엄마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온 나, 아버지는 끝내 북으로 가고…. 아버지는 작가와 가족에게 사회적 「멍에」였다. 『성년시기까지도 아버지가 간첩 복장을 하고 어느날 문득 대문을 열고 들어서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하곤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이번이 분단소설의 끝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나이에 맞는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예를 들면 치매. 지금 치매에 걸리는 세대들은 일제강점 분단 전쟁 독재 산업화라는 격랑을 헤쳐온 세대. 치매를 통해 이들의 인생역정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변화를 꿈꾸지만 한 사회현상의 저류에서 「시대의 아픔」을 건져올리는 그의 진지한 작가정신의 다짐인 것같다. 〈이광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