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는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나는 반지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건 끼어보아야 불편하기만 하고 또 잃어버릴까봐 조심스럽다. 누구와 스치면 상대방을 다치게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애물이라는 것이 내가 가진 반지에 대한 생각이다. 신혼초에 결혼반지를 끼었을 때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특히 손을 씻을 때면 걱정부터 앞섰다. 빼놓자니 곧 잃어버릴 것 같고 그냥 씻자니 흠집이 생길 것 같았다. 결국 3일만에 반지끼기를 졸업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내 손가락에 낀 반지에만 한정된다. 여인의 손에 있는 반지는 쓸모 없고 불편해 보이지를 않는다. 그저 예쁠 뿐이다. 그 중에서도 아내의 손가락에 끼여 있는 반지는 특히 예뻐보인다. 결혼 전에 한창 데이트를 하던 무렵의 일이다. 『나, 반지 하나 해주면 안될까. 그냥 싼걸로』 아내가 무척 망설이면서 어렵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지 뭐. 그런데 갑자기 반지는 왜』 『무언가 결혼할 것이라는 그런 상징이라도 있었으면 해서』 여러가지 사정으로 약혼식을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약혼식에 대해 아내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었다. 그 다음 날 아내에게 한 돈쭝짜리 금반지를 사주었다. 『나 이것 닳아 없어질 때까지 끼고 있을게』 얼마나 좋았던지 아내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때 이후 아내는 그 반지를 항상 끼고 다녔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여행을 갈 때, 심지어 그럴듯한 모임에도 그 반지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10년쯤 지났을까. 그동안 아내의 반지는 조금씩 닳아서 가늘어지고 있었다. 이제 그 반지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을 때쯤 아내는 또 하나의 반지를 얻었다. 이번에는 큰 아이가 봄 소풍을 다녀오면서 사가지고 온 1천원짜리 쇠반지였다. 『난 삼종지도(三從之道)같은 말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아이가 사다 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아내는 말을 이었다. 『결혼 전에는 제 반지를 아버지가 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 다음이 당신, 이제 자식의 반지예요. 그러고보니 그 말이 새롭네요』 여자는 결혼전에는 아버지, 결혼하여 남편, 나이 든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봉건시대의 그 고리타분한 말에 아내는 나름대로 다른 해석을 붙였다. 따라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말하자면 삼애지도(三愛之道)쯤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뭐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나로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그런 생각이라면 그 반지 빼. 닳지 않는 것으로 사줄게. 아직은 내 차례라구』 황인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