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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핀族]끼리끼리 꽂고 남다른 情 표현

입력 | 1997-04-22 09:14:00


「오렌지족」 「야타족」에 이어 최근 여중고생들 사이엔 「핀족(Pin 族)」이 등장했다. 「핀족」은 말 그대로 핀을 끼고 다니는 여학생들의 무리. 그러나 단순히 핀만 꽂으면 누구나 핀족이 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핀은 그들의 우정과 친분의 상징이자 선후배 관계를 엄격하게 가르는 계급장이다. 「핀족」이 생겨나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 어느날. 「영턱스클럽」이나 「쿨」의 언니들이 TV에 한창 많이 나올 때였다. 엄청나게 큰 청바지를 엉덩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무대를 휘젓는 「언니」들의 현란한 모습이 여중고생들의 마음속에 전염되듯 파고들었다. 「그래. 우리 함께 똑같은 핀을 꽂아서 여자들만의 세계와 의리를 나타내는 거야」. 이후 서울 강북지역의 성신여대입구와 가리봉동, 잠실운동장옆 신천 등 중고생들의 집결지를 중심으로 핀족이 「세포증식」을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핀을 꽂을까. 핀을 몇개나 꽂는 걸까. 지난 17일 밤 10시 서울 성북구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서 「핀족」들을 찾아 나섰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줄지어 서있는 2백여m의 「성신대로」를 따라 20개가 넘는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하얀 머리핀 2개씩을 똑같이 앞머리에 가로질러 꽂은 채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던 송모(15) 양모양(15)과 마주쳤다. 서울 D여중 재학생인 이들은 입을 모아 『학교친구 5명이 모두 똑같은 핀을 앞머리에 2, 3개씩 꽂고 다닌다』고 귀띔했다. 그들은 같은 핀을 꽂은 친구들끼리는 남다른 정을 느끼고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인정해 준다고 설명했다. 핀족은 저녁이 되어야 비로소 태어난다. 학교에서는 검은색 「실핀」외에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 보검처럼 「비장해 둔」 핀을 꺼내 자신을 단장하는 것이다. P카페에서 만난 H여고 박모양(16.1학년)과 민모양(17.2학년)은 「핀족」의 「내밀한 사연」을 털어놨다. 민양은 『핀은 단순히 몸치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계급장』이라고 말했다. 선배가 될수록 핀의 개수가 많아지고 그룹의 리더는 큐빅이 달린 「왕핀」을 꽂기도 한다는 것. 실제로 박양의 1년 선배인 민양은 박양보다 1개 많은 3개의 핀을 앞머리 위에 꽂고 있었다. 두 명 모두 헐렁한 「힙합」스타일 바지에 몸에 달라붙는 스웨터 차림. 후배인 박양은 『선배보다 핀을 많이 꽂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조금 있다 후배가 생기면 핀의 개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양재영씨(29)는 『핀족은 대중문화의 단순 모방에서 시작됐으나 싼 비용으로 자신들의 정체성(正體性)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층 사이에 퍼져나가는 것같다』고 분석했다. 〈이승재기자〉